본문 바로가기
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45)

by 훈 작가 2023. 10. 11.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서울이여, 안녕
  
“아빠는 어디 가셨어?”
“그간 대사관 직원들이 아빠 때문에 고생 많았다며 스티브 대사하고 몇몇 직원들에게 점심 한 끼 대접한다고 나가셨어.”
“내일 비행기 탈 일만 남았네.”
“그렇지.”
“막상 서울을 떠난다니까 실감이 나지 않아.”
“그건 너도 모르게 정이 들어서 그런 거야.”        
“커피 한잔할래?”
“아니, 생각 없어. 엄마! 뭐 좀 물어봐도 돼?”
“뭔데?”
“엊그제 김 변호사님하고 모든 걸 정리하고 헤어지던 날. 눈물이 나서 참느라 힘들었어.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닌데 난생 이런 느낌 처음이야. 이 감정이 뭔지 잘 모르겠어.”
“조금 전에 얘기했잖아. 정들어서 그런 거라고.”
“정(情)…”
“말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한국인 특유의 정서라고 말해야 하나, 이를테면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어.”
“너무 어려워. 좀 쉽게 말해 봐.”
“영어권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랑(Love)이지, 미국인들은 사랑으로 살지만, 한국인은 정으로 살아. 사랑은 불꽃처럼 뜨겁지만, 정은 따뜻한 햇살처럼 은은하지. 쉽게 만나 불같이 뜨겁게 사랑하는 게 아니라, 천천히 오래도록 만나면서 서로 가까워지는 사랑이라고 이해하면 될 거야.”
“참 아리송하네.”
“네가 김 변호사님하고 헤어지면서 너도 모르게 슬픔을 느꼈다는 건 사랑이 아니라 정이야. 처음엔 이해관계 때문에 변호사와 의뢰인으로 만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해관계를 초월해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고 인간적인 사랑을 갖게 되는 감정 때문에 네가 슬픈 감정을 느낀 거야. 정이라는 건 하루아침에 생길 수가 없어. 그런 점에서 사랑과 다르지. 사랑은 처음 본 순간 확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정은 그렇지 않아.”
“이제야 조금 이해되네. 헤어지면서 변호사 사무실을 나서는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면서 나오더라고, 전철역까지 가는데 눈물이 그치지 않는 거야.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도 그 눈물이 뭔지를 모르겠더라고. 참 이상하다 생각이 들어 엄마한테 불어보고 싶었어.”
“Anna야! 너나 나나 겉만 미국인이지, 속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야.”
“그런 거야.”
  입국장이 만남의 무대라면 출국장은 이별의 무대다. 은영이 인천공항 제2 터미널에 들어서자 많은 인파로 정신이 없었다. 오가는 사람들 모두가 카트에 여행용 가방과 짐을 싣고 분주한 모습이다. 은영이 어쩔 수 없이 스마트 폰을 꺼냈다. 
“언니! 나 출국장에 와 있는데 몇 번 카운터야.”
“뭐 하러 나왔어. 바쁠 텐데.”
“어딘지 빨리 말해. 언니한테 전해 줄 게 있어서 왔어.”
“여기, F 카운터야.”
“알았어, 금방 갈게.”
은영은 카트에 단단하게 포장한 종이상자 몇 개를 싣고 F 카운터로 향했다. 가보니 여행객들 사이에 은명과 John Edward가 보였다. 그녀가 카트를 밀고 가면서 “언니!”라고 큰 소리로 불렀다.
“형부! 안녕하세요.”
John이 웃음으로 은영을 쳐다보았다. 
“Anna는 어디 갔어?”
“자동 셀프 체크인 기계에 갔어.”
“이게 뭐니?”
은명이 카트에 실린 포장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언니 주려고 어제저녁 담근 김치야, 미국에 가거든 내 생각을 하며 맛있게 먹어.”
“아휴, 얘 좀 봐. 이걸 다 어제저녁 담았다고.”
“이~그, 언니도 이게 얼마나 된다고 야단이야.” 
“얘! 옛날이나 지금이나 손 큰 건 여전하구나.”
그 사이 Anna가 발권을 마치고 와 은영을 보고 말했다.
“이모! 왔어. 근데 이게 뭐야?”
“김치야.”
“무슨 김치가 이리 많아?”
“비닐에 담아 묶은 다음 락 앤 락 용기에 담아 포장한 거라 냄새도 안 날 거야.”
“이모! 이거 담고 몸살 안 났어?”
“몸살 날 게 겁나면 못 하지. 네 엄마 생각하니까 하나도 힘들지 않더라.”
“엄마! 이거면 일 년도 더 먹겠다.”
“Anna야! 얼른 아빠하고 짐 부치고 와.”
“알았어, 이모!”
  두 사람이 짐을 부치러 간 사이 자매는 두 손을 꼭 잡았다. 
“언니! 우리 살면서 자주 얼굴 좀 보자. 이제 산 날 보다 살아야 날이 적잖아.”
“그래, 네 말에 맞아.”
“언니! 나 외롭게 만들지 말고 자주 서울에 와. 알았지?”
“그래, 자주 올게.”
“약속한 거야.”
“그래, 은영아! 알았어.”
“언니! 우리 삼척에 멋진 콘도 있어, 다음에 올 땐 미리 연락해, 예약해 놓을 테니까. 알았지?”
은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짐을 부치고 두 사람이 돌아왔다.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출국장에 들어서려는 순간 은영이 참고 있던 눈물을 터트렸다. 
“언니!”
은명이 애써 눈물을 참으며 동생을 껴안았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 안고 울었다. 은명은 동생을 달래며 눈물을 참았다. 
“언니! 꼭 서울에 다시 와야 해, 알았지.”
은영이 울먹이며 은명의 손을 놓았다. 옆에 있던 Anna가 은영을 보며 말했다.
“이모!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엄마를 졸라서라도 같이 올게요.”
“설은별! 꼭 약속 지켜.”
“옙! 그럼 갈게요.”
“그래, 우리 자주 연락하며 지내자.”
“알았어. 이모!”
은영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자, 언니! 들어가.”
  막상 출국수속이 시작되자 아쉬웠던 이별의 순간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면세점 구역으로 들어왔다. 면세점 매장마다 여행객들로 넘쳐다. Anna가 John의 왼쪽 팔짱을 끼고 Boading Gate 쪽으로 걸어갔다. Susan이 이를 지켜보며 따랐다. 
  탑승구 주변에 여행객을 기다리는 텅 빈 의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가족이 활주로가 보이는 쪽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서울에 올 때는 서로 따로따로 왔었다. 그러나 오늘은 함께 돌아간다. Susan의 가슴에 잔잔한 행복이 나비처럼 날아와 앉았다. 행복이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우리는 그걸 모르고 산다.
  시시각각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번갈아 보였다. 요란한 굉음이 울릴 때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솟았다. 이륙한 비행기가 하늘로 한 점이 되어 사라질 때였다. Susan의 스마트 폰에 문자 알림 소리가 들렸다. 문자 메시지를 열어 보았다.
“언니! 잘 가, 건강하고 
또 서울에 와!
그때는 내가 점심 살게.”
Susan의 얼굴에 미소가 돌았다.

'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 > 장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을 죽인 달(47)  (1) 2023.10.13
별을 죽인 달(46)  (2) 2023.10.12
별을 죽인 달(44)  (2) 2023.10.10
별을 죽인 달(43)  (0) 2023.10.09
별을 죽인 달(42)  (2) 2023.10.0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