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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

별을 죽인 달(47)

by 훈 작가 2023. 10. 13.

본 이미지는 인터넷세어 내려 받았음

 

Second life
 
  소살리토(Sausalito)는 스페인어로‘작은 버드나무’라는 의미로 San Francisco에서 북쪽으로 7km 떨어진 작은 휴양도시다. 예쁜 상점과 갤러리들이 모여 있는 동네로 경관이 아름답다 보니 영화의 촬영 장소로 자주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부촌이기도 하다. 
  나는 병원을 정리하고 Second life를 위해 이곳에 삶의 터전을 잡았다. 부촌이라 정착한 건 아니다. 동네가 조용하고 문학, 미술 등 예술인들이 많이 몰려 사는 곳이라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 바닷가 절벽으로 된 지형으로 태평양 연안에 있어 주변 경치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곳은 금문교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철도와 교통의 종착지로 물류 기능의 중심지였다. 2차 세계 대전 당시는 조선소들이 자리 잡고 있어 공장지대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기도 했고, 한때는 아편 소굴이자 마피아의 아지트로 소문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젊은 예술가와 음악가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금문교가 준공되었고 예술가들이 많이 정착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San Francisco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멋진 고급 주택들이 들어섰다. 상전벽해란 말처럼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골든게이트 국립 휴양지역(Golden Gate National Recreation Area)이 주변에 있어 휴식을 취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이곳은 피셔맨즈워프(Fisherman's Wharf)로 페리도 다닌다. 페리가 도착하는 선착장 주변에는 각종 갤러리와 레스토랑들이 거리에 즐비하다. 마지막 페리 시간대인 오후 6시를 전후하여 레스토랑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는다. 
  해안가 도로에는 유럽풍의 멋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냥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낭만적인 곳이다. 예술작품이 전시된 갤러리는 인상적이다. 이곳에 살며 작품 활동을 하는 예술인들이 직접 창작활동을 통해 만든 작품들이다. 옷 가게나 아이스크림 판매장들 하나하나가 예쁘게 단장을 한 채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휴일이면 바닷가 쪽으로 산책을 즐기거나 단체로 라이딩하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거리는 차량이 많지 않아 혼잡하지 않아 젊은 데이트족들에게 인기가 많다. 연인이 사랑의 밀어를 나누기에 딱 어울리는 거리다. 한마디로 매력적이고 낭만이 넘치는 곳이다.
  
  심장도 예전만큼 뜨겁지 않다. 인생 항로를 얼마나 항해할 수 있을까? 미국에 돌아와서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남은 인생은 내 영혼을 위한 삶의 시간을 걸어 보고 싶었다. 이제 나 자신도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과 자유를 누릴만한 자격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차피 삶은 시간에서 소멸한다. 그 시간까지  쉼 없이 달려온 영혼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 
  Anna가 내 인생의 축복이자 행복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녀석이 내 삶의 불꽃을 불태우게 해 주었다. 그러나 더 이상 녀석을 내 품에 가둘 수는 없다. 이제 Anna를 풀어 줄 시간이 되었다. Anna도 자신만의 꿈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내가 딸을 위해 해야 할 일 단지 하나다. 그것은 Anna를 위해 주님께 기도드리는 일이다.
  내가 병원을 정리하자 남편도 40년 정치 생활을 은퇴했다. John은 그간의 정치역정을 뒤돌아보며 회고록 집필을 하는 중이다. 남편은 그것이 그간 국가를 위해 봉사한 마지막 헌신이라 생각했다. 그는 이후의 삶을 나와 같이 여행과 글쓰기로 여생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남편에게 무작정 여행을 떠나자고 했다. 남편은 내 제안에 놀라며 계획이 있느냐 물었다. 누군가 여행은 떠날 수 있는 용기만 있으면 머무는 것은 선택의 자유라 했다며 남편을 설득했다. 그는 미소로 답했다. 여행은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란 말을 우리 부부는 행동으로 옮겼다.
  네바다 사막을 달려 그랜드 캐니언을 찾았다. 영겁의 시간이 만든 자연 앞에 서니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빛은 장관이었고 우주 속에 그려진 은하수는 무한 감동을 만났다. 가슴에 밀려드는 벅찬 감동은 지금껏 살아온 지친 내 영혼과 우리 부부의 삶을 위로해 주었다.
  별은 어떤 존재인가? 점 하나에 불과한 존재다.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그보다 못한 티끌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가 별처럼 살고 싶어 하고 별이 되려고 노력하며 산다. 인생은 너나 할 것 없이 별처럼 소중하니까 말이다. 우리가 별을 꿈꾸며 사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콜로라도강이 깎아 놓은 협곡은 심장을 압도했다. 애리조나에서 만난 앤털로프 캐니언은 색다른 경이로움이었다. 신비로 가득한 협곡은 예술적 감동을 하게 해 주었다. 눈 내리는 10월 브라이스 캐니언은 환상이었다. 예고 없이 날리는 눈보라 속에 붉은 병풍처럼 펼쳐진 자연경관을 만났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내 영혼을 사로잡은 것은 자연이었다. 자연이 나를 깨닫게 했다. 언젠가는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다. 자연은 항상 인간에게 가르침을 준다. 다만 내가 자연을 찾아가 만날 때만 자연이 내게 주는 가르침이다. 자연이 주는 깨달음은 어디까지나 내 몫이다. 
  척박한 사막의 땅 모뉴멘트 밸리는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 황량한 그곳은 역사가 만든 아픔이 실존하는 땅이었다. 나는 인디언들의 삶을 들으면서 우울했다. 그들의 터전에서 불어오는 차디찬 비바람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세상은 비극과 희극이 상존한다. 인생에 눈물만 있는 삶은 행복이 없다. 
  여행이 주는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자유는 구속받지 않는 시간이다. 여행은 그런 시간이다. 여행은 떠나서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여행이 만든 궤적을 추적해 보고 싶었다. 
  여행은 눈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보고 심장으로 느낀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면 연기처럼 사라진다. 나는 여행의 궤적이 흔적 없이 날아가는 것이 너무 아쉬운 나머지 무작정 컴퓨터를 켰다. 서투른 손놀림으로 자판을 두드려 가며 기억이 침대로 기어서 들어가는 것을 붙들었다.
  졸음에 젖어있는 추억의 조각들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퍼즐을 맞추듯 지난 장면들이 하나하나 맞추어 나갔다. 머릿속에 날아다니던 나비가 꽃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외롭게 피어있던 꽃잎에 나비가 날아와 앉았다. 어설픈 손으로 지나간 여행의 기억을 그리기 시작했다. 
  문장이 어떻고 문법이 어떻고 나는 모른다. 단지 머릿속에 남아 있는 여행의 기억을 글로 이동시키는 작업에만 집중했을 뿐이다. 그렇게 글쓰기와 씨름을 하면서 여행의 추억을 기록으로 완성했다. 오지 미지 탐험과도 같은 글쓰기의 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인생 역정에 녹아든 삶의 조각들은 무수히 많다. 대부분은 망각 속에 빠져 사라진다. 사라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망각 속으로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 조각을 다시 꺼내 보면 두 가지 얼굴로 다가온다. 하나는 행복이란 추억으로 다가오고, 다른 하나는 고통이란 기억으로 다가온다.
  추억 속의 담긴 행복은 Second life의 아름다운 선물이다. 행복이 담긴 추억이 많을수록 축복받은 인생을 산 것이다. 아픈 상처로 기억되는 과거는 후회를 떠올리며 현재의 시간을 탄식으로 채운다. 탄식의 세월은 눈물만 적신다.
  나는 달리 생각했다. Happy 바이러스는 인생에 많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행복이란 열매가 결실을 보려면 과정이 있게 마련이다. 특히 한 가족의 역사는 희로애락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드라마다. 드라마는 과정을 통해 행복한 결말을 끌어낸다. 과정은 역경과 갈등을 슬기롭게 풀어가는 싸움이다.      
  서울에서 겪은 과정이 그랬다. 그 시간은 행복으로 가는 고통의 행로였다. 권력이 퍼트린 바이러스는 여러 형태로 고통을 변이 시키면서 공격했다. 나는 이를 막을 백신이 없었다. 유일한 건 사랑의 힘이었다. 주님의 사랑과 가족 간의 신뢰가 만든  
백신으로 우리는 행복을 지켜냈다. 
  아이러니했다. 그토록 나를 두렵게 했던 판도라 비밀을 이르는 말이다. 나는 행복을 누리며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불안한 행복이었고 불안정한 삶이었다. 내 인생의 종착역에 이를 때까지 판도라 상자는 열리지 않을 것이라 나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행복의 실체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을 다양한 얼굴로 만나고 느끼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서로 공감할 때 빛나는 명사가 행복인 것을 깨달았다. 행복은 가족이란 공동체 안에서 만들고 공유하며 공감할 때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것이라 나는 믿는다.
  나는 서울에서 겪은 아픔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사랑으로 지켜낸 행복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이야기 속에 내 삶의 영혼과 진실을 닮아 보고 싶었다. 이런 마음은 인간이 지닌 가장 기본적인 본능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기록을 남기고 싶어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글쓰기는 절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있는 그대로 쓰면 되겠지. 어려울 게 뭐 있겠어.’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쓰려고 하니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몇 번을 망설이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머릿속이 하얀 물감이 퍼지듯 날 석고상으로 만들었다. 첫 문장부터 막혔다. 앞이 캄캄했다. 
  컴퓨터를 끄고 돌아섰다. 마음이 움츠러들면서 이걸 글로 꼭 남겨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흔들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내 자신의 이중적인 마음이 문제였다. 꼭 쓰고 싶어서 컴퓨터 앞에 앉으면 어느새 틈바구니로 끼어드는 솔직하지 못한 소심한 성격이 심장을 두렵게 만들었다. 두려움이 용기를 막았다.
  와인 냉장고를 열어 반쯤 남은 와인 병을 꺼냈다. 와인 잔에 가득 채워 한 모금 마셨다. 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단숨에 마셔버렸다. 알코올 성분이 포도 향에 묻어 식도를 타고 올라왔다. 와인 향이 용기를 주었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서투른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른쪽에 금문교(Golden Gate)가 보인다. 마지막 문장 쓰고 서재에서 바라보는 풍경이다. 마음이 홀가분했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뭔가 부족함이 있다. 그것이 뭔지 모르겠다. 과연 내 영혼을 담아 진실을 모두 쏟아냈는지 의문이 들었다. 혹여, 나도 모르게 위선과 가식이 들어가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솔직함의 문제다. 사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을 많이 고민했다. 전임 대통령의 실종 부분이다. 나는 그의 실종 소식만 듣고 서울을 떠났다. 이후의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다만, 어떤 경우든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하기는 바람이다. 인간의 생명을 스스로 끊는 행위는 죄악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천주교 신자였다는 사실이 역겨웠다. 그가 악마의 탈을 쓰고 어떻게 주님의 어린양처럼 행세했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 나는 그가 천주교를 기만했다는 생각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가 진정 주님을 섬기는 신자라면 차라리 개종(改宗)하여 남은 인생을 회개하면서 살기를 원했다. 
  용서하는 건 쉽지 않다. Anna가 용서의 길을 선택한 것은 자신을 위한 길이다. 용서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Anna는 평생 분노 속에 살아야 한다. 분노의 삶 속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다. 행복이 있어야 할 자리에 증오만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의 의미를 새롭게 깨달았다. 사랑은 시간을 잊게 하고, 시간은 사랑을 잊게 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시간 속에서 잃은 것은 사랑이다. 하지만 다시 찾은 것도 사랑이다. 우리는 모든 걸 시간 속에서 배우면서 깨닫고 이를 모두 시간 속에 묻고 떠난다. 삶은 시간 속으로 들어와 머물다 떠나는 여행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우리 가족의 행복을 지켜 준 주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내 생애 처음 쓴 글의 제목을 붙였다. 

《별을 죽인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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