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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 일출

by 훈 작가 2023. 3. 3.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틱한 스포츠 경기라도 재방송은 밥맛이다. 그런데 나이아가라 폭포는 다르다. 보고 또 봐도 꿀맛이다. 재방송이라도 좋다. 지겹다는 단어가 여기서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중독’이란 낱말이 삐집고 들어온다. 어느새 나이아가라 폭포에 중독된 환자가 되어 버렸다. 이를 어쩌나?  약이 없다. 환자 스스가 깨어나야 한다. 중독되었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부작용이 없다. 건강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나이아가라에 흠뻑 빠져있는 황홀을 경험하고 있는데 아직도 2%가 부족하다. 부족한 것은 채우면 그만이다. 그것을 채우고자 크루즈 선착장으로 발걸음 옮겼다. 더 가까이 가고 싶다. 나이아 갈 품속으로. 새로운 유혹의 손짓에 속절없이 마음이  무너지고 있다. 마냥 어린아이처럼  즐겁다. 유혹은 멀리서 즐기는 것보다 품 안에서 즐기는 게 더 실감 날 듯하다. 가까이하기엔 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크루즈 선에 오르기 위해 한 무리 여행객과 같이 기다란 줄 끝에 붙었다. 크루즈 터미널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이동하기 위해 정해진 통로를 따라 앞사람만 보고 이동했다. 안내원으로 보이는 직원이 빨간색 비닐로 된 우의를 나누어 준고 있다. 그것을 하나 받아 들고 또 따라간다. 가까이하긴엔  자꾸 심장이 뛰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미리 갖추어야
할 절차가 우의를 입는 일이다.
 
멀리서 보기엔 분명 나이아가라는 부드러운 표정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기에는 웬일인지 두려움이 느껴진다. 그 이유는 가는 길은 공포감을 주고도 남을 깊고 짙은 푸른 강물이 깔려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하늘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강물을 보니 무섭다. 같은 빛깔인데 다른 느낌, 이게 뭐지? 나는 하늘색을 좋아한다. 파란 하늘색이다. 좋아하는 색이 하늘고 강물에 맞닿아 있다. 그런데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늘은 나의 꿈이고 이상이었다. 그 꿈은 항상 가슴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여길 온지도 모른다. 따뜻한 품속에 중 하나가  나이가아라를 만나는 것이었다. 이제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꿈을 안고만 살았었는데  이제 곧 그녀를 만나게 되면 떠나보내야 할 것 같아 한편으론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  산다는 것은 내 마음속에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저 멀리 있던 내 사랑이 왜 갑자기 공포와 무서움으로 다가오는 걸까.
 
선착장에 들어서니  크루즈선이 천천히 저만치서 다가왔다. 투어를 마친 여행객들을 가득 싣고 선착장에 접안하자 빨간색 우의를 입은 이들의 얼굴로 또렷하게 보였다. 마치 폭우를 맞은 것처럼 대부분 비닐이 젖어 있다. 하나 같이 웃음이 함박꽃처럼 피었다. 행복에 겨운 표정들이다. 크루즈선상의 꼭대기엔 캐나다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이윽고 앞쪽에서부터 투어를 마친 관광객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왼쪽에 걸쳐 있는 레인보브리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미국과 캐나다를 나이아가라강 협곡 사이에 걸쳐 있는 다리다. 다리 아래쪽은 포물선을 그리며 무지개 같은 타원형의 구조로 되어있고 그 위에 다리 상판이 직선으로 길게 누워있다. 멍하니 보고 있을 때  줄이 서서히 움직이며 크루즈 선으로 이동했다. 잠시 뒤 크루즈가 움직였다. 대부분 사람들이  2층 갑판으로 갔다. 폭포를 구경하려면 당연히 2층이다. 
 
서서히 강을 거슬러 올라가자 미국 쪽 폭포가 아름답게 다가왔다. 그 모습이 신부의 면사포인 양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하얀 면사포 물줄기가 바닥에 있는 바위를 세차게 때리면서 하얗게 흩어졌다. 가까이서 본 American Falls는 하나가 아니다. 오른쪽 루나 섬을 끼고 그 옆으로 작은 폭포가 하나 더 있다. 일명 면사포(Bridal Veil Falls) 폭포다. 루나 섬 난간에 미국 쪽 관광객이 멀리 보였다. 나이아가라강을 거슬러 캐나다 폭포로 올라가면서 레인보 폭포와 미국 폭포가 한눈에 들어왔다. 왼쪽으로 스카이론타워와 어제 숙박한 힐튼 호텔도 보였다. 캐나다 폭포는 Horse shoe라고도 한다. 그 폭포가 점점 가까이 내게 다가온다. 물보라가 장난이 아니다. 엄청난 물줄기가 뒤흔든다. 천둥소리가 맞다. 거센 눈보라가 산사태와 맞물려 쏟아지듯 떨어졌다. 고출력 스피커에서 터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공포감이 몰아쳤다. 비로소 우리는 자연 앞에 나약함을 인정하는 작은 인간이 되는 것 같다. 자연의 힘이다. 나이아가라의 힘이다. 경이로움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담대한 나이아가라강은 아무런 말 없이 포옹하며 그녀의 분노를 달랜다.
 

 
시냇물이 개구쟁이들 장난하듯 재잘거리며 즐겁게 노는 소리라면 나이아가라강은 인생을 살 만큼 산 어른들의 침묵이 흐르는 숨소리다. 삶의 무게를 경험하고 그때그때 고비마다 단맛 쓴맛 경험하다 보면 인생의 맛을 알게 된다. 한 줄기 도랑물이 굽이굽이 흐르다 보면 이리 부딪히고 때로는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걸 강물은 안다. 아마 나이아가라강 정도면 굳이 말이 필요 없을 게다. 대륙을 가로질러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으리라. 이제 마지막 여정을 앞두고 폭포수가 되어 부서지고 상처투성이가 될지언정 멈추지 않고 내 길을 가야 한다. 그 누가 그 길을 가로막을 것인가.  아무도 없다.  인생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 이 강물처럼 말이다.  
 
갑판 위에서 강물을 보고 있으면 갑자기 전율과 공포가 온몸에 전해진다.  장엄하게 들리는 폭포수가 나약한 인간들이여 두려워하지 말지어다.라고. 하듯이 내게 미소를 보낸다. 악마의 소리와 신의 전율을 담은 외침이 녹아서 흐르는 것 같다. 폭포가 만든 강물은 파란색 물 감음 잔뜩 부어 놓은 것처럼  묵묵히 흐르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속이 깊은 강물은 여행객의의 환호에도 아랑곳없이 말이 없다. 강의 언어는 침묵이다. 사람 마음속이 깊다고 한들 그 속을 어디 여기에 비길 수 있겠는가?  태산이 높다고 한들 하늘 아래 뫼일 뿐이다. 강물이 아무리 깊다고 한들 나이아가라강만 할 수 있을까? 나이아가라강의 깊이는 무려 56m나 된다고 한다.
 
“헐!”
 
크루즈선이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바등바등거리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하직을 고했다. 그 순간 크루즈선이 힘들게 물살을 헤치던 엔진 박동을 멈추었다. 선체를 돌리면서 흐르는 급류에 몸을 맡긴 것이다. 멀어져 가는 캐나다 폭포가 언덕 위에 하얀 커튼처럼 걸쳐 있다. 아련히 60년대 트로트 가요(대전 블루스)를 가왕 조용필이 리메이크한 노래 가사 한 소절이 떠올랐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아래쪽에서 오는 크루즈 선이 스쳐 지나갔다. 그 배의 갑판 위에 파란색 비닐 우의를 입은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미국 쪽에서 승선하여 올라오는 크루즈선이다. 깃발도 성조기다. 나이아가라강은 협곡 사이로 흐른다. 그 공간의 주인은 갈매기다. 강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캐나다의 보이지 않는 국경선은 너의 것 나의 것으로 구분하지만 갈매기는 아랑곳없다. 이 강의 주인은 내 것이라며 마음대로 누비고 있다.
 
크루즈 투어를 마친 관광객들이 빨간색 행렬을 만들며 긴 아나콘다 뱀처럼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빠져나왔다. 황홀경에서 빠져나와 다시 돌아왔다. 원래 인간의 모습이긴 한데 아직도 환각상태처럼  꿈을 꾼 듯하다. 중독과 환각의 껍질을 벗고 나오자 다시 꿈속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불과 몇 분 전 나이아가라 폭포 턱밑에서 떨고 있던 그 모습을 다 은 잊은 것이다. 건망증인가? 나약했던 얼굴에서 본래의 화색이 돈다. 웃음도 보인다. 모든 사람은 다 그런가 보다. 작열하는 7월의 태양이 중천에서 여름을 뿜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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