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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단편소설

살구(1)

by 훈 작가 2023. 10. 17.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늘 그러했듯, 새벽닭이 울자, 할멈이 산책을 나섰다. 들녘을 한 바퀴 돌고 마을 초입의 느티나무 정자를 지날 때, 마루 밑에 엎드린 낯선 개 한 마리가 보였다. 할멈이 다가가자, 녀석이 일어나 뒷걸음질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이놈아! 어디서 왔어?”
할멈이 개와 눈을 맞추며 쪼그려 앉았다.
“멀뚱멀뚱 쳐다만 보지 말고 이리 와. 어서.”
녀석은 겁먹은 듯 경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자세히 보니, 상처 난 오른쪽 뒷다리에 피가 엉겨 붙은 채 파르르 떨었다.
“버릴 거면 애초부터 키우지 말아야지. 누가 이런 시골에다 버렸을까?”
안쓰러운 표정으로 할멈이 혀를 차며 일어났다. 집으로 향하던 할멈이 몇 걸음 가다 뒤를 보았다. 개도 할멈을 뚫어질 듯 쳐다본다. 
아침 햇살이 기지개를 켜며 올라왔다. 경운기가 느티나무 길로 통통통 내려갔다. 놀란 개가 귀를 쫑긋 세우고, 경운기 쪽을 보다가 제자리에 앉았다. 
밥 한 덩어리를 데운 양재기를 들고, 할멈이 정자로 왔다. 잔뜩 겁먹은 녀석이 꼬리를 뒤로 감추며 경계하듯 쳐다보았다. 할멈이 양재기를 개 앞으로 밀어 놓고 몇 발짝 물러섰다.
“야 이놈아, 배고플 텐데, 밥 좀 먹어.”
개가 찌그러진 양재기로 다가와 냄새를 맡더니,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바닥을 샅샅이 핥으면서, 양재기가 돌부리에 부딪혔다. 
“배가 많이도 고팠구먼.”
할멈이 다가와 빈 그릇을 집어 들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놈아. 이리 와봐.”
개가 꼬리를 살살 흔들며 도망가지 않고 제자리에 앉았다. 
“나랑 같이 가자. 걱정하지 마. 난 버리지 않을 테니까.”
녀석이 거칠고 주름진 할멈 손에 코를 갖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더니, 혀로 몇 번 핥았다. 
“가자. 어서.” 
개가 꼬리를 살살 흔들며 할멈 뒤를 따라갔다. 할멈은 비어있던 개집에 낡은 담요를 깔아 주었다. 
“이제부터 여기가 네 집이다.”
녀석이 개집 안을 기웃거리다 슬며시 들어갔다. 할멈이 마당을 가로질러 마루에 걸터앉았다. 살구나무 아래 개집이 그다지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이름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 허구한 날 마루에 앉아 살구나무만 봤었지. 이젠 살구나무 대신 놈이라도 볼 수 있으니까, 살구라고 부르면 되겠구먼. 
“살구야. 살구야.”
할멈이 살갑게 불렀다. 개집에 누웠던 녀석이 귀를 쫑긋 세웠다. 마치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알아챈 듯 할멈을 멀뚱 쳐다보았다. 심심할 때마다 놀러 가던 용식 할멈도 잊은 채, 살구나무 아래 살구를 바라보면서 하루를 보냈다.
저녁을 먹고 TV를 켰다. 하루도 빠짐없이 치솟는 아파트값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소외되는 농촌이 뉴스로 나오는 경우가 없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도 마찬가지다. 
TV 위 벽에 걸린 남편의 영정 사진이 눈에 띄자, 아들 생각이 났다. 온다는 연락도 없이, 어제 아들 내외가 다녀갔다. 아들은 복숭아밭을 담보로 대출받겠다며, 은행 대출서류에 인감도장을 찍어 달라 떼를 쓰다 올라갔다. 며느리는 힘든 농사는 그만두고, 그간 고생하셨으니 요양원으로 들어가 쉬는 게 어떠냐고 생각해 주듯 말했다. 
할멈은 기가 차서,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영감이 살아있으면 아들과 며느리가 저러지 못할 텐데, 서글픈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시부모를 모시며 삼 대 독자라고 애지중지 키워놨는데, 아직도 철이 들지 않았다. 결혼하면 좀 낫겠지,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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