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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단편소설

사랑하면 안 되니(5)

by 훈 작가 2024. 1. 12.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사랑하면 안 되니

   

    금요일 저녁 퇴근길, 차은희는 윤민수와 아들 문제를 상의해 보고 싶어 만나자고 했다. 코엑스 인근에 있는 G 호텔 커피숍에서 보자고 했더니 그가 알았다고 한다. 그는 언제나 ‘No’라고 대답하는 법이 없다. 데이트 초기엔 혹시 선수가 아닐까 하고 의심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진심에서 나오는 배려였다. 속으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차가 막힐 것 같아 일찍 나왔는데 길이 뻥 뚫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니 커피숍 안쪽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맑은 샘물 위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청아한 피아노 선율이 차은희에게는 힐~링 음악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바탕 화면에 깔린 아들 사진을 보면 언제나 힘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답답하다. 녀석이 윤민수와의 관계를 불륜으로만 여길 것 같다. 어떻게 해서든 잘 이해시켜야 하는데 아들은 그렇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때 윤민수가 맞은편에 앉았다.
“많이 기다렸어요?”
“아녜요. 저도 조금 전에 왔어요. 뭐로 드실래요?”
“저야 항상 똑같죠.”
   차은희가 초코라테 두 잔을 주문했다.
“민수 씨! 지난번 미안했어요.”
“아니요, 오히려 제가 미안했어요. 아들이 기숙학원에서 나오는 날인 줄도 모르고.” 
   여종업원이 초코라테 두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가 먼저 한 모금을 살짝 입에 댄 후 물었다. 
“상의하고 싶은 게 있다면서요.”
“저~어, 따님이 우리 만나는 거 알아요?”
“알죠. 그런데 그건 왜 물어요?”
“따님, 반응이 어땠어요?”
“사실, 저도 걱정했는데 의외였어요.”
“의외라뇨?”
“아빠! ‘축하해’ 하잖아요. 그래서 진심이니? 하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아도 먼저 재혼하라고 얘기를 꺼내고 싶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조건을 붙였어요.”
“조건이요.”
“조건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겁이 나더라고요.”
“그게 뭐였어요.” 
“엄마처럼 아빠만 바라보는 여자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여자라고 했어요?”
“그럼, 어떻게 말해요.”
   윤민수 얼굴이 금방 빨개졌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통 모르겠어요.”
“….”
  윤민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차은희를 보며 듣는다.
“아들하고 한 약속이 마음에 걸려요.”
“약속?”
“아빠처럼 바람만 피우지 말라고 했거든요.”
“은희 씨! 우리는 바람피우는 게 아니에요, 사랑하고 있는 거예요.”
“아, 맞아요. 그렇긴 해도 녀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요. 사실을 알게 되면 뭔가 사고 칠 것만 같아 걱정되거든요.”
“하긴 중3이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세상에 비밀은 없잖아요. 어차피 다 알게 될 텐데…. 그래서 민수 씨 의견 좀 듣고 싶어 뵙자고 했어요.” 
“프라하에서도 얘기했지만, 서두를 필요 없어요. 저는 은희 씨가 좀 당당했으면 좋겠어요. 이혼했다고 사랑하면 안 되는 건가요. 아들을 어린애로 보지 말고,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해 주는 생각이 필요할 것 같아요.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설득할 수 있도록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회가 되면 ‘엄마는 사랑하면 안 되니?’ ‘평생 혼자 살아야 하느냐’고 물어보세요. ‘아들, 너 같으면 혼자 살 거야.’ 이런 식으로.”
“사실, 수현이와 대화가 많은 편이 아니거든요. 다른 엄마처럼 자상하지도 않고요. 늘 회사 일로 피곤했고, 버티고 살아남아야 살 수 있으니까요. 수현이가 착하긴 해도 항상 말없이 잘 따라주니까 항상 고마웠죠. 제가 이기적인지 모르지만 그런 날 이해해 줄 거라 믿고, 여태껏 지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게 더 마음에 걸려요.” 
“은희 씨 말대로라면 아직도 사춘기가 안 지난 듯해요. 저는 수현이가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 걱정 마요. 그렇지 않고 정식으로 결혼해야 마음이 놓인다면, 아들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이해를 구해야죠. 혹시 엄마가 재혼하면 자신이 버림받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잖아요. ‘엄마가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 하고 오해하면 그게 더 충격일 거예요. 제 생각엔 우선 우리 둘 관계를 먼저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도 민수 씨 의견에 동의해요. 그런데 수현이가 받아들일까, 확신이 안 서요.”
“믿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생각해요.” 
“믿어라.”
“아들이 먼저 눈치라도 채면 속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오히려 그게 더 문제를 키울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요즘 애들 우리 때와 달라요.”
“뭐 가요?”
“옛날 같지 않고, 어른스럽다는 얘기죠.”
“알았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
   호텔 주차장을 빠져나오자 도심 빌딩 숲 사이로 어둠이 내려앉았다. 테헤란로는 차량 전조등 불빛과 빌딩 조명이 뒤섞여 불야성을 이루었다. 차은희는 생각했다. ‘그래, 민수 씨 말이 맞을지도 몰라. 조만간 그렇게 해 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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