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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중편소설

Hot Dog(6)

by 훈 작가 2023. 12. 30.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트라우마

  지영은 이모 집에 맡겨 놓은 ‘Hot Dog’를 데리고 나왔다. 부쩍 흰머리가 많아진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아파트로 돌아가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하지.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무슨 수를 내든 풀어야 하는데 자꾸만 떠밀려 Hot Dog 문제가 내일로 또 내일로 넘어간다. 
  Hot Dog를 조수석에 내려놓고 시동을 켠 다음 에어컨 버튼을 누르고 바람 세기를 최대로 올렸다. 온종일 뙤약볕 때문에 차 안이 찜통이다. Hot Dog도 입을 벌리고 혓바닥을 내밀어 ‘헉!~헉!’ 댄다, 시원한 바람이 나오자, 지영은 열어 두었던 양쪽 차창 문을 올리고 좌우를 살피며 액셀 페달을 밟았다. 
  아파트를 빠져나오자마자 우회전했다. 교차로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어 브레이크를 밟았다. 이모와 나눈 말이 떠오른다. 마음이 심란하다. 그때 차 뒤에서 경적소리가 크게 들렸다. 녹색신호로 바뀌었다. 오른손으로 비상깜빡이 버튼을 눌러 미안하다는 신호를 보내며 출발했다. 
  오피스텔 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을 열고 바닥에 Hot Dog를 내려놓자, 녀석이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쪼르르 달려가더니 배변 패드로 가 엉거주춤 자세로 볼일을 본다. 녀석이 많이 참았던 것 모양이다. 차에서 응가를 하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녀석을 기특하게 생각하며 지영이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보니 자꾸만 이모가 한 말이 어른거린다. 

 “지영아! 어지간하면 집에 들어가, 강아지는 이모가 잘 키울 줄게.”
 “그럴 생각 없어.”
 “그럼, 계속 이렇게 살 거니?”
 “그건 아닌데 나도 잘 모르겠어. 엄마가 왜 고집을 피우는지 이해 안 돼.”
 “그래도 네가 이해해야지. 너도 알다시피 여태껏 지영이, 너 하나만 보고 산 엄마잖아.”
 “나도 알아. 수의대 갈 때 빼놓고, 내가 하는 일을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던 엄마야. 그래서 더 이해가 안 돼. 이모! 그러지 말고, 이모가 엄마를 설득해 주면 어떨까?”
 “지영아! 아무리 자매지간이지만 네 엄마 고집을 어떻게 꺾어.”
 “이모! 나 수의사야. 내가 이모한테도 누누이 말했을걸. 내가 애견 카페 만들어 엄마에게 맡기고 나는 동물병원 하고 싶다고. 이모! 그게 내 꿈이야.”
 “엄마도 알고 있니?”
 “당연하지. 동해 바다가 마르고 닳도록 얘기했지.”
 “엄마가 뭐라고 하든?”
 “뭘 뭐라고 해. 그래, 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라고 말하시던 엄마가 안 된다고 하니까, 이게 뭐지? 요즘 우리가 하는 말로 ‘헐!’ 이지.” 
 “엄마가 그랬단 말이야?”
 “이모! 그러니까 엄마를 이해 못 하겠다는 거야.”
 “엄마는 왜 반대한다고 하시든?”
 “말로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거야. 그래서 돈 걱정 하지 말랬지. 그건 내 월급으로 다 해결하겠다고, 그런데 엄마가 할 말이 없는지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그렇게 개를 키우고 싶으면 나 더러 나가 살라고 하잖아. 어쩌겠어. 갖고 온 개를 다시 돌려보낼 수는 없는 거잖아. 내가 나와 사는 수밖에.” 
 “지영아! 
 “왜? 이모!”
 “이걸 너한테 얘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뭔데? 이모!”
 “있잖아, 사실은?”
 “사실은, 뭐?”
 “네 엄마, 개 트라우마 있어.”
 “개 트라우마?”
  지영은 깜짝 놀라며 이모를 쳐다봤다. 
 “그래. 트-라-우-마.
 “사실이야?.”
 “사실이지.”
 “난 이모가 개를 좋아하니까, 당연히 엄마도 그럴 거로 생각했거든. 어쨌거나 엄마가 ‘개 트라우마’가 있다니까, 뜻밖이네,”
“지영아! 그래도 포기 안 할 거니?” 
 “꿈을 어떻게 포기해. 이모! 그나저나 어쩌다 트라우마가 생긴 거야?!”
 “너 아기 때라 기억이 없겠지만, 형부가 개를 엄청나게 좋아하셨어.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상황은 모르겠는데, 개한테 물려서 좀 고생했거든. 그 이후로 개만 보면 질겁하며 싫어했어.”
 “엄마는 그런 말 안 하던데.”
 “그게 뭐 좋은 얘기라고 하겠니?”
 “아니, 그렇게 개를 싫어하면서 어떻게 보신탕집을 해. 말이 되냐고.”
 “지영아! 먹고살려면 무슨 일을 못 하겠니? 네 엄마, 형부하고 이혼하고 막막했어. 얼떨결에 식당 주방 일을 시작했는데 그게 보신탕집이었지. 게다가 네 엄마가 한식 조리사 자격증도 있고 솜씨가 있으니까 식당 주인이 바로 오케이 한 거야.”
 “….”
  지영은 깜짝 놀랐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이혼’이라니 엄마는 분명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이모! 이혼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이건 얘기하면 안 되는데~.”
 “이모! 말해 봐. 나도 성인이잖아.”
 “저기 있잖아. 으음, 형부가 바람피웠어.”
 “바람?”
 “개 키우는 사람들끼리 모임이 있거든, 요즘 말로 하면 카페나 동호회 같은 거지.”
 “그런데?”
 “거기서 여우 같은 아가씨와 눈이 맞은 거야. 형부가 짧게 끝냈어야 하는데, 뭐든지 꼬리가 길면 잡히잖아. 그게 들킨 거야. 불같은 네 엄마 성격에 어떻게 되겠니? 말하나 마나지. 지영아! 엄마한테는 모르는 척해. 혼자서만 알고, 알았지?” 
 “….”
 “왜, 말이 없어?”
 “아-아 알았어요. 이모!”
 “어쨌든 네 엄마 불쌍해. 네 엄마만큼 고생한 사람 이 세상에 없을 거야.””
 “….”
  지영은 갑자기 가슴이 먹먹했다.
 “지영아!”
 “네, 이모!”
 “참고할 게 하나 더 있다.”
 “뭔데?”
 “트라우마보다 더 중요한 거야. 뭐냐 하면, 우울증이야, 네 엄마 우울증 있었어. 이혼하고 난 후 한동안 배신감에 사로잡혀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우울증 치료를 받았어. 지금은 다 낫긴 한 거 같은데, 이모 생각엔 가급적 엄마랑 사이가 틀어지지 않게, 네가 잘했으면 좋겠어. 어쩌겠니? 엄마잖아.”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우울증이라니? 지금껏 몰랐던 엄마의 과거를 알게 되었다. 지영은 혼란스러웠다.
 “지영아! 네 엄마는 오로지 믿을 건 돈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보신탕집도 왜 한 줄 알아? 무엇보다돈이 많이 남는다는 걸 안 거야. 엄마 처지에서는 창피한 걸 알면서도 빨리 돈 벌 욕심으로 하게 된 거라고.” 
 “나도 엄마가 돈에 집착하는 게 좀 남다르다 했어.”
 “형부를 미워하긴 했어도 네가 형부를 닮아 예쁘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니?”
 “그런 말 처음 듣는데.” 
 “네 엄마, 연애는 빵점이었지. 어쩌다 형부한테 푹 빠져 어쩔 줄 몰라했지.”
 “아빠가 미남이셨어?”
 “그러니까 여자들이 형부를 가만 놔두지 않았지.”
 “너도 시집갈 나이가 되었으니까 말인데, 남편감으로 너무 잘생긴 남자 찾지 마. 여자나 남자나 다 얼굴값 하기 마련이야. 그나저나 남친 있니?”
 “….”
 “있구나, 혹시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거 맞지. 그렇지?”
 “그야 가 봐야 알지.”
 “너, 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 결혼은 좀 빠른 거 아니니?”
 “이모! 그렇긴 한데….”
 “너, 남친한테 푹 빠졌구나.” 
 “푹 빠졌다는 이모 말이 이상하게 들려. 사랑은 사랑이고 결혼은 결혼이야.”
 “어쨌든 너도 조심해. 남자 너무 믿지 말고.”
 “난 남자를 믿는 게 아니고, 나 자신을 믿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니?”
 “내 인생의 모든 건 내가 결정해. 내가 남자한테 질질 끌려다니는 연애는 안 해.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쿨’하게 헤어지고 다른 남자 만나면 돼.” 
 “남녀관계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니니?”
 “아니, 어려울 게 뭐 있어. 서로 코드가 맞으면 결혼까지 가고, 아니면 접는 거지. 안 그래, 이모!”
 “지영아! 참 거침없이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다.”
 “옛날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난, 마치 결혼이 인생의 전부 인양 매달리거나 집착하지 않겠다는 뜻이야. 사랑은 필수이지만 결혼은 선택이야. 꼭 해야 하는 건 아니야.” 
 “결혼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이런 말이니?”
 “당근이지. 난 내가 원하는 그림이 있어. 거기에 남자가 따라오면 사랑이 결혼이 될 수 있지만, 아니면 언제든 이별을 선택할 거야.”
 “애견 카페와 동물병원 말하는 거니?”
 “맞아. 이모!”

  그간 이해할 수 없었던 수수께끼가 풀렸다. 엄마가 겪고 있는 고통을 벗어나게 해야 한다. 보신탕집을 접게 해야 하는 이유가 더 명확해졌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지영은 빨리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엄마를 설득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지영의 마음을 괴롭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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