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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에세이

대장내시경 검사

by 훈 작가 2024. 1. 29.


  망설임 끝에 이 이야기를 씁니다. 꺼내기가 민망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입니다. 지난 목요일 건강검진 때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이 있었습니다. 문제의 상황은 대장 내시경 검사 때였습니다. 그냥 수면 내시경 방식으로 받았으면 그냥 모르고 넘어갔을 텐데 마취 안 하고 일반 내시경 검사를 받았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일입니다. 
  사실 위나 대장내시경검사는 받기 싫었습니다.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전날 밤, 약을 먹어야 하는데, 약 냄새가 너무 역겹고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며 속을 다 비워야 게 싫었던 겁니다. 게다가 수면 마취 방식으로 검사를 받고 나면 머리가 멍하고 어지러워 집으로 오다 자칫 운전사고도 날 수 있을 것 같은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아내가 검진을 같이 받자고 할 때마다 완강하게 버텼습니다. 아내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며 못마땅히 여겼습니다. 그러던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생겼습니다. 어느 날 아침 혈변이 나와 깜짝 놀랐다. 혹시 대장암 아닌가, 걱정되었습니다. 검색창에 대장암을 쳐 보았더니 증세가 비슷했습니다.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를 눈치챈 아내가 건강검진을 신청하면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아 보라 하니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와 같이 S 병원을 방문해 건강검진을 신청하면서 검진 날짜를 확정하고 왔습니다. 검진 날짜가 다가오면서 정말 대장암이면 어떡하지, 은근히 걱정도 되고 긴장이 되었습니다. 
  검진 전날 금식한 후, 저녁부터 시간에 맞추어 내시경 검사에 필요한 약을 먹었습니다. 야릇한 약 냄새가 매우 역겨웠습니다. 그래도 예전보다 불쾌한 냄새는 좀 나아진 듯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복부에 신호가 오자, 계속 화장실을 드나들며 속을 비우는 작업을 반복해서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S 병원으로 갔습니다. 일반적인 검진이 모두 끝나고 마지막 내시경 검사를 위해 대기실로 갔습니다. 수면 내시경 검사를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 간호사 부축을 받으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회복실로 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마취에서 깬 그들이 어떤 상태인지 짐작이 갔습니다.
  같이 기다리던 아내가 마취 방식이 아닌 일반 검사를 받는 게 건강에 훨씬 좋다며 그렇게 하자고 말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졌습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고, 간호사가 마취하고 받을지, 그냥 받을지 물었습니다. 마취 안 한다고 하니까 통증을 감수해야 하는데 할 수 있겠냐고 재차 물어보기에 알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검사실로 들어갔습니다. 간호사 안내에 따라 검사대로 올라가 옆으로 누웠습니다. 그녀가 자세를 잡아 주고 난 후 의사가 들어왔습니다. 젊은 여자 의사였습니다. 먼저 위내시경 검사를 위해 의사 지시에 따라 기구를 입에 꽉 물고 있으니, 검은 호스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게 느껴졌습니다. 염려할 정도로 통증은 아니었습니다.
  상황은 대장내시경 때였습니다. 젊은 간호사가 옆으로 자세를 잡아 주면서 엉덩이를 가리고 있던 동그란 천을 걷어냈습니다. 항문 주위에 뭔지 모르지만, 간호사가 약을 바른 후 다시 의사를 다시 불렀다. 조금 전 그 여자 의사였습니다. 

“아버님, 조금 아프셔도 참으세요.”
“예, 알겠습니다.” 

  내시경이 잘 들어가지 않는지 반복해서 항문에 힘을 빼라고 내게 말했습니다. 창피해서 그런지 몸이 내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간호사를 불러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잠시 후 항문 속으로 마치 민물장어가 헤집고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느껴졌습니다. 기묘한 통증이 느껴지는 가운데 두 사람이 서로 검사 진행 상황을 주고받았습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간호사가 바로 누워 왼쪽 다리를 꼰 형태로 자세를 잡으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내시경이 꿈틀거리며 움직였고 더 깊숙하게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검사를 받으면 내 몸 안을 들여다보는 게 신기했습니다. 세상이 좋긴 좋은 세상이구나 하고 생각할 즈음 젊은 여자 의사가 말했습니다. 
 
“아버님, 여기 좀 잠깐 보세요. 이게 용정이거든요. 두 개가 보이는데 제거할까요?”
  화면을 가리키며 여의사가 설명해 주었습니다.
“예.”

  가느다란 올무처럼 생긴 도구로 용정을 제거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내시경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는지 여의사가 간호사에게 말했습니다. 

“저기 아버님 아랫배 좀 꽉 눌러 주세요,”

  그러자 간호사가 내 옆으로 오더니 두 손을 내 환자복 바지 안으로 쑥 집어넣었습니다. 순간 움찔하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하복부를 꽉 눌렀습니다. 하마터면 그곳까지 손이 닿을 뻔해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확 빨개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너무 민망했습니다. 
  말하기는 그렇지만 당혹스러운 순간은 지나갔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수면 내시경 방식으로 검사를 받을 걸 그랬나 싶었습니다. 이런 경험은 다시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음 건강검진은 다른 병원에서 받아야겠다, 생각하며 병원을 나섰습니다. 그나저나 대장암은 아니어서 마음이 홀가분했습니다. 

(20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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