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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러시아

푸시킨의 ‘사랑과 전쟁’

by 훈 작가 2024. 2. 2.
푸시킨 초상화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가이드는 투어 버스 안에서 다 하지 못한 푸시킨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푸시킨은 러시아의 국민으로부터 추앙받는 시인이다. 그는 젊은 나이에 불행한 삶을 마감했다. 가이드는 그가 귀족 집안의 명예를 지키려고 결투를 벌이게 된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말하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아내 곤차로바와 당테스가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남녀 간의 사랑 문제는 복잡하다. 질투와 시기가 있고 예기지 못한 삼각관계가 얽혀 있기 마련이다. 

푸시킨은 러시아 상류층에서 미인으로 소문난 곤차로바에게 청혼했다. 그녀 나이 당시 18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13살 연상이었던 남성과 사별한 경험이 있었다. 그녀의 집안은 이미 몰락해 곤차로바를 돈 많은 남자에게 결혼시켜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이 때문에 양쪽 집안의 어머니 모두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다, 하지만 푸시킨은 곤차로바와 결혼한다. 이 무렵 푸시킨은 다시 관직에 등용되었고 이 후, 둘 사이에 아들 둘, 딸 둘이 태어났다. 

곤차로바 결혼 후에도 사교계에서 인기가 많았고 적지 않은 풍문을 일으키고 다녔다. 그중에는 니콜라이 1세와 불륜 관계라는 염문설도 나돌았다. 푸시킨은 이런 소문에 애써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 푸시킨도 자신의 사생활도 문제가 많았다. 왜냐하면 복잡한 여자관계나 문란한 여성 편력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가 총독 부인도 건드렸다 들키는 바람에 망신 당하기도 했다. 

곤차로바 초상화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푸시킨은 아내 곤차로바가 스캔들을 일으키고 다니고 있다는 익명의 투서를 받는다. 푸시킨은 당시 곤차로바와 가깝게 지내던 프랑스 출신 귀족인 근위대 장교 당테스 남작이 범인이라고 확신했고 당테스에게 결투 신청을 한다. 하지만 당테스와 그의 처제가 결혼하면서 결투는 무산되어 버렸다. 그래도 곤차로바와 당테스와의 소문은 끊이지 않자, 푸시킨과 당테스에게 다시 결투를 신청한다. 

결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 '쵸르나야 레치카'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유럽 여러 나라에서의 결투는 서로 25보에서 30보 떨어진 거리에서 권총을 쏘았다. 그런데 푸시킨과 당테스 사이의 거리는 10걸음을 넘지 않았다. 결투 조건이 너무 안 좋았으나 약속한 규칙에 따라 총을 뽑아 쏘았다. 그러나 당테스가 먼저 쏜 총탄에 푸시킨은 치명적인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푸시킨이 쏜 총알은 당테스의 오른손을 슬쩍 스쳐 지나갔다. 

복부에 총상을 입은 푸시킨은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아내 곤차로바를 푸시킨은 만나주지 않았다. 도저히 아내를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오는 걸 느꼈는지, 다음 날 곤차로바를 만났다. 그리고 푸시킨은 곤차로바에게 “나의 죽음 때문에 자책하지 마.”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당시 푸시킨의 나이 38살이었다. 

당테스 초상화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당테스도 끝이 좋지 않았다. 결투 이후, 군인 당테스는 군복을 벗고 러시아에서 추방당했다. 그는 조국 프랑스로 돌아가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한 후 외교 임무를 비밀리에 수행했다. 그리고 프랑스 외교사절로 당당하게 러시아 궁정에 다시 나타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보불전쟁으로 나폴레옹 3세가 축출된 후에는 지방으로 떠돌며 은둔하며 지내다가 비참하게 사망했다고 한다.

예전에 인기 드라마였던 ‘사랑과 전쟁’에서 다루던 주제가 바로 남녀 간에 불륜이나 치정(癡情)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랑이란 주제는 영원한 숙제다. 푸시킨도 이 숙제만은 잘 풀지 못한 모양이다. 그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라고 했지만, 분노를 참지 못한 걸 보면 그도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삶이 그를 속였는지, 아니면, 사랑이 그를 속였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사랑의 실체는 우리에게 미스터리일지 모른다.

가이드 이야기를 듣고 보니 ‘사랑과 전쟁’의 불륜 드라마 한 편을 본 느낌이 들었다. 다만, 주인공이 푸시킨과 그의 아내 곤차로바 그리고 당테스인게 다를 뿐이다. 그럼에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두 남자가 벌인 ‘결투’이다.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걸까. 물음표에 대해 정답을 찾아보려 하니 나도 잘 모르겠다. 사랑과 질투 사이에 말할 수 없는 함수관계가 있는 모양이다. 사랑의 실체가 뭔지 영원히 풀지 못하는 현재 진행형의 퍼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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