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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러시아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

by 훈 작가 2023. 3. 14.

아르바트 거리에 도착했다. 이 거리는 러시아의 문화와 예술을 상징하는 곳으로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 비교되는 곳이다. 도스토옙스키, 고골리, 차이콥스키, 푸시킨이 살며 문학과 낭만을 풍미했던 거리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아르바트”는 아랍어의 “라바드”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시장’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가이드는 전했다. 그가 거리 초입에 있는 푸시킨의 동상과 맞은편 신혼집을 설명하며 푸시킨에 대한 일화를 소개했다. 푸시킨의 사랑에 얽힌 남자들의 결투 내용이었다.


그는 4번의 구애 끝에 18살의 아리따운 ‘곤차로바’와 결혼하는 데 그리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 것 같지 않다. 아내의 바람기가 결혼생활을 불행으로 이끌었다. 행복도 잠시, 아내 ‘곤차로바’는 바람기가 많아서 많은 남자를 거느리며 사교계에서 유명한 여인으로 이름을 날렸고, 급기야는 황제 형부와의 스캔들까지 터지고 만다. 

결국 이를 참지 못한 푸시킨이 그를 찾아가 결투 신청을 했다. 그런데 ‘곤차로바’의 형부는 군인이었다. 군인 장교와 시인의 결투는 결과가 뻔하다. 그 결과 푸시킨은 총에 맞고 시름시름 앓다가 38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결투 상대였던 군인 장교도 손에 총에 맞아 크게 다쳤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푸시킨의 죽음이 아니고 죽기 전에 병상에서 그가 시름시름하면서 쓴 시(詩)가 바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詩)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은 그리움으로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순간에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죽기 전에 쓴 시라고 하니 시인의 죽음은 더 비극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는 많은 이들이 애송한다. 아마 그가 죽으면서 삶에 대한 영감을 마지막으로 시를 쓴 모양이다. 몇 번을 음미해도 삶에 대한 통찰력이 녹아 있는 느낌이 든다. 짧은 시간이지만 여행을 통해서 그의 문학적 예술적 자취가 남아 있는 이 거리에서 삶과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본다. 모스크바 여행은 생각보다 문학적이고 사색의 여정인 것 같다. 


거리의 총길이는 2km 정도 되며, 거리의 초입에 푸시킨의 동상과 함께 푸시킨이 신혼 시절 살던 집이 보존되어 있다. 아내와 난 빅토르 최(루스 꺼 까레이쯔)의 벽까지 걸어보기로 했다. 기념품 상점마다 러시아의 상징인 마트료시카가 진열되어 있다. 많은 젊은이로 붐빌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거리에는 스산한 바람과 다소 한산한 모습이었다. 늦가을 같은 찬바람이 아르바트 거리를 휭~하고 불며 쓸어간다. 

10여 분 정도 걸으니 우측 골목에 낙서 같은 그림과 러시아어로 표기된 글씨가 벽에 그려져 있었다. ‘빅토르 최’의 얼굴도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다. 벽 한쪽 끝에 5명의 젊은 러시아 사람들이 무엇인가 이야기하며 서 있다. 그저 벽에 낙서로 보기에는 너무 슬프다. 가까이 가서 보니 ‘빅토르 최’를 향한 러시아인의 사랑이 느껴지는 것 같다. 벽에 쓰여 있는 러시아 글은 “빅토르 최, 우리의 연인(사랑)”이라는 말이라고 한다. 빅토르 최가 많은 러시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것은 민주화 흐름에 영향을 준 가수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관계 당국으로부터 노래나 공연하지 못하도록 불이익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이곳 벽도 시 당국이 재개발 명분으로 철거하려 했으나 많은 시민의 반발로 결국은 현재 상태로 보존하게 되었다고 한다. ‘빅토로 최’는 고려인 3세 록 가수였다. 이곳이 오래도록 잘 보존되어 계속해서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로 남기를 바라면서 발길을 돌렸다. 여기서도 인증 사진은 필수학점이다. 


다시 온 길을 되돌아간다. 거리의 찬바람이 분다. ‘춥다’라고 표현하기에는 과장이 있고 참 애매한 날씨다. 중간중간 사진을 찍고 아르바트 거리 초입까지 왔다. 입구에는 맥도널드 매장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와 같이 들어가 본다. 커피라도 한잔했으면 하는 아내 마음을 챙겨주지 못했다. 메뉴판을 보니 도무지 뭔지 모르겠다. 줄 서는 것도 귀찮고 하는 수 없이 커피를 포기하고 화장실만 들렀다.  잠시 따스한 공간에서 찬바람을 피하고 자유시간이 끝날 무렵에 매장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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