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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여행이다/러시아

여름 궁전

by 훈 작가 2024. 7. 19.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를 벗어나 달린다. 한적하기 그지없는 초원지대를 거침없이 내달리는 버스는 한 마리 야생마 같다. 산이라고 생긴 건 하나도 없다. 그러더니 가로수가 아름다운 길로 접어든다. 여름 궁전에 도착한 모양이다. 현지 가이드인 리나 김이 서두른 덕분에 매표소가 별로 붐비지 않은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패키지여행 동선은 여행사마다 별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유명 관광지마다 붐비기 마련이다. 불과 몇 분 차이로 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차이 난다. 늦게 입장하면 그만큼 일정이 늘어져 시간에 쫓기게 된다. 이런 이유로 경험 없는 가이드를 만나면 여행객들은 피곤하다. 그런 면에서 리나김은 여자이지만 베테랑 가이드다.

운이 따른다. 모처럼 파란 하늘이 우리를 반긴다. 모스크바에선 이런 하늘을 볼 수 없었다. 리나 김을 따라 여름 궁전 안으로 들어섰다. 그래도 우리보다 먼저 와서 투어를 즐기고 있는 여행객들이 있다. 어느 여행사인지 모르지만, 리나김보다 한 수 위인 가이드를 만났나 보다. 어쨌든 귀에 익숙한 한국말이 낯설지 않게 만든다.
 
여름 궁전은 말 그대로 여름만을 위한 특별한 곳이다. 피터 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30km 떨어진 이곳에 만든 별장 같은 궁전이다. 즉. 우리말로 옮기면 별궁쯤 될 것이다. 여름 궁전은 가장 큰 건물이 웅장하게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고, 그 앞쪽 아래로 계단식 폭포가 있다. 주변엔 황금색 조각상들과 64개의 분수대가 있다.

그래서 별칭이 분수공원인가 보다. 삼손이라 불리는 대형분수대에서 시작되는 운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배들이 도착하는 핀란드만까지 직선으로 곧게 뻗어있다. 이 궁전은 1714년~1725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지금의 바로크 양식은 겨울궁전을 건축한 라스트 렐리에 의해 1745년부터 10년간의 공사로 완공했다고 한다.
 
대 궁전건물 아래쪽으로 64개의 분수가 물을 뿜어대는 7개의 계단을 따라 흘러내리고, 연못 중앙에 삼손이 사자의 입을 찢고 있는 모습의 황금색 조각상이 있다. 리나김 설명에 따르면 러시아가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삼손과 사자는 각각 러시아와 스웨덴을 상징한다고 한다.

분수 앞쪽에서 시작되는 운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배들이 도착하는 핀란드만까지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운하가 끝나는 바닷가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동상이 있는데 설명이 끝나는 대로 한 번 가 보란다. 그런데 이곳은 너무 넓어서 구경하는 데 만만치 않게 시간이 걸리니 한 곳에 너무 오래 있을 수 없다.
 
누군가 왜 대분수에 물이 나오지 않느냐고 물었다. 리나김은 아직 가동 시간이 안 되어서 그렇단다. 분수대 가동은 5월 초~10월 말까지로 오전 11:00 시부터란다. 아직 시간이 안 된 것이다. 리나 김의 설명이 끝나자, 아내와 난 분수대 오른쪽 공원으로 코스를 잡았다. 때마침 소풍 나온 것 같은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간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이쪽 분수대는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운하가 보이는 핀란드만 쪽으로 잘 정리된 나무들이 군 사열 하듯 차렷 자세로 가로수 길을 만들며 뻗어있다. 조금 더 바닷가 쪽으로 들어가니 빨간색 지붕의 건물 별채가 해변을 바라보고 있다. 그 건물 앞쪽에도 분수가 마치 밤하늘 불놀이하듯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다시 그 건물을 보면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튤립꽃이 한 폭의 정물화처럼 아름다운 색감을 자랑하고 있다. 붉은색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 뒤로 원숙미를 자랑하듯 흰색 바탕에 옅은 분홍색으로 물든 튤립이 우릴 반긴다. 먼저 본 튤립이 10대 러시아 소녀라면, 여기 있는 튤립은 20대 아가씨처럼 농익은 아까씨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튤립 짙은 립스틱을 바른 러시아 아가씨처럼 아름답다. 게다가 꽃대가 커 늘씬한 서양여인을 떠오르게 한다.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다. 정원을 지나자, 핀란드만이 보였다. 그곳을 보며 우거진 숲으로 걸음을 옮겼다. 왜 이리 시간이 빨리 가는가 싶었다. 너무 멀리 가면 늦을까 봐 다시 중앙 분수대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일행이 모여야 할 시간이 11시 20분이다. 
 
중앙 분수대가 보일 무렵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분수대에서 일제히 물이 뿜어져 올라왔다. 오전 11시가 됐나 보다. 서둘러 가 보니 언제 이렇게 사람이 많이 왔는지 많은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시간을 보니 관람을 마무리해야 할 듯했다. 너무 아쉬움이 남는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했는가. 그래서 사진을 몇 컷 더 찍었다.

매표소로 걸음을 옮겼다.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다시 정원의 끝에서 여름 궁전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매표소로 나왔다. 햇살이 따갑다. 주차장까지 조금 걸어야 했다. 버스가 줄지어 서 있는 곳 왼쪽 언덕길에 가로수와 의자가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여름 궁전을 떠나며 본 마지막 장면이다. 시간에 딱 맞추어 버스에 오르니 이미 다른 일행이 다 와 있었다.
 
이번 북유럽 12일 일정 중 러시아는 이틀(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각 하루씩)이다. 뒷골목 구석구석까지 볼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이다. 러시아만 구경할 수 있는 상품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휴가 기간을 다 쓴다 해도 7일이니, 주말 연휴에다 연차를 쓴다 해도 일정은 한계가 있다. 방학을 이용해 자유배낭여행을 떠나는 MZ세대들이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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