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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벚꽃엔딩

by 훈 작가 2024. 4. 6.

떨어진 꽃잎들이 나 뒹굽니다. 이 봄날 모든 걸 다 바쳐 꽃으로 살다 졌는데 무슨 여한이 있겠습니까. 짧지만 이 봄과 춤추고 나면 기다리는 건 이별입니다. 마지막 춤을 추고 나면 초연하게 돌아서야 합니다. 이별은 아무런 미련도 남기지 말고 떠나야 합니다. 행여 봄비가 눈물 되어 슬픈 연가라도 불러주면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꽃으로 살던 화려했던 시절은 잊어야 합니다. 당신을 사랑했던 것처럼 보였던 것은 착각일 수 있습니다. 속세의 사랑은 위선적인 믿음일지도 모릅니다. 겉으로는 환호작약(歡呼雀躍)하며 두 팔 벌려 반기던 사람들, 그런데 뒤돌아서며 화무십일홍이라며 눈물도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과 마주 보며 보였던 그 미소. 그건 사랑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닐 겁니다. 떠나가는 모습을 꽃눈이라 부르며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시인은 봄과 당신이 이별하는 장면을 진심 어린 언어로 밤새 잠 못 이루고 문장을 엮어냅니다. 그들은 감성을 한 올 한 올 문자에 새겨 넣으며 슬픔을 노래합니다.  때론 애절하게 때론 아름답게. 아마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있는 세상,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묻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우린 세월 속에 들어와 수많은 나날을 맞이하고 보내지만 아직도 삶에 집착하는 구차한 모습을 보이는 건 부질없는 일인걸 모르고 삽니다. 삶과 죽음은 본래 같은 것임을 모를 리 없을 터인데.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너무 슬프니까. 

수많은 꽃잎이 떨어져 있습니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처럼 살며시 밟고 가면 슬프진 않으련만. 뒤돌아서는 발걸음에 처연하게 짓밟힙니다. 진 꽃잎들의 절규 속에 웃음을 잃고 하얗게 숨이 멎어갑니다. 피고 지는 게 꽃만은 아니겠지만, 사람들은 마치 남의 일처럼 외면합니다. 생의 소멸은 그래서 슬픕니다. 그게 운명인 걸 어찌하겠습니까.

묵언수행처럼 봄과 같이 살아온 지난 시간. 생(生)은 다시 돌아온단 기약을 하지 못하고 눈을 감습니다. 이제 흙으로 돌아가면 세월은 삶의 흔적이 지워버릴 겁니다. 무언가 잔뜩 쥐고 놓지 않으려 했던 삶, 부질없던 걸 깨닫게 되고,  이제 빈손으로 떠납니다. 꽃으로만 살고, 꽃으로 남길 바라는 삶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벚꽃엔딩은 우리에게 인생무상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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