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봄이 미워진다.

by 훈 작가 2024. 4. 15.

꽃눈이 날립니다. 여름처럼 덥기까지 합니다. 아직은 아닌 데, 봄이 떠날 채비를 하는 모양입니다. 여름이 성질 급하게 봄의 자리를 밀어내는 것 인지, 봄이 급한 일이 생겨 자리를 비켜 주고 떠나려 하는 것인지. 아무튼 한낮엔 여름 같은 봄입니다. 주말 최고 기온이 29도까지 올라간다고 하니, 아니 벌써. 이건 아닌데 싶습니다.

봄이 미워집니다. 꽃이 지기도 전에 봄이 떠나가는 모양새입니다. 그럼, 꽃은 봄과 낭만을 즐기기도 전에 이별해야 한단 말인데. 이거 참, 매정하기 짝이 없습니다. 계절도 생존경쟁에 나선 것인지, 아니면 속세의 선거판에 뛰어든 것처럼, 죽기 살기로 작정하고 싸우는 것인지. 자연계의 질서도 아수라판처럼 어지럽습니다. 

지난 월요일, 파란 하늘과 배경으로 벚꽃을 담으러 나섰습니다. 흐린 날씨가 하루 종일 이어졌습니다. 벚꽃은 만발했는데, 심술궂은 하늘은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마음이 불편한지 끝끝내 찌푸린 얼굴로 하루 일정을 마감하고 퇴근했습니다. 속으로 해도 너무 한다, 싶었습니다. 날씨는 신의 영역인 걸 어떡합니까.

토요일.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일기예보에 다시 나섰습니다. 고속도로나 국도 모두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서해안 쪽은 안개까지 짙게 끼었습니다. 안개가 낀 걸 보면 파란 하늘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일기예보대로 오전부터 기온이 성큼성큼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봄인데 기온만 보면 분명 여름이었습니다.

반 팔 차림으로 카메라만 들고 내렸습니다. 그런데 벚꽃 길 꽃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꽃이 이상합니다. 하얀 요정 같았던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사춘기 여학생 얼굴에 난 여드름처럼 보기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꽃이 지면서 동시에 입이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땅바닥엔 이차돈이 순교하며 하얀 피를 뿌려 놓은 듯 보였습니다. 

그래도 갈산리 주민들은 벚꽃길 축제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습니다. 한쪽에선 푸드 트럭에 먹거리를 팔고 있고, 주차 봉사에 나선 동네 주민들이 교통정리를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무대를 중심으로 앞쪽 잔디밭에 관람석도 마련되어 있고, 관계자들이 봄축제 점검하느라 분주한 모습이고, 자원봉사 나온 남녀학생들이 둑길 쓰레기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갈산리에서 당진 천을 따라 걸었습니다. 햇살이 따갑습니다. 사진의 미학을 그리며 벚꽃풍경을 눈으로 담습니다. 건너편 둑으로 오가는 연인들, 봄날의 사랑을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벚꽃을 머리에 이고 자전거 타는 사람도 다양합니다. 운동 삼아, 봄나들이 나온 부부, 라이딩 동호회 회원끼리. 보기 좋은 풍경입니다.

꽃이 많이 지긴 했어도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다만, 꽃눈이 날리는 걸 보면서 봄을 미워하는 소리가 봄바람에 썩여 들여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슬퍼서 우는 소리로 다가왔습니다. 아직은 떠날 때가 아닌 네, 봄이 먼저 꽃을 버리는 것 같습니다. 꽃들이 이건 아니라며, 이해할 수 없다며 울먹이는 듯 보입니다. 

벚나무가 말합니다. 때가 되면 내려놓을 텐데, 누군가 자꾸 신에게 재촉하는 것 같다고. 여태껏 내려놓을 줄 아는 삶을 살아왔는데, 봄이 싫어하는가 보다고. 떠나는 벚꽃들이 하나 같이 봄이 변심했다고 미워한다고 합니다. 아마 사랑이 식었나 보다고, 하면서 봄을 미워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덩달아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듯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봄은 아니라고 변명합니다. 벚꽃이 땅에 떨어지는 건 내 탓이 아니고, 뉴턴이 중력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며. 봄을 미워하지 말라 합니다. 어쨌든 나도 봄이 예전 같지 않게 미워지는 건 사실입니다. 어쩌면 우리와 헤어질 결심을 한 게 아닐까, 걱정도 됩니다. 더 미워지기 전에 봄이 마음을 바꾸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Photo 에세이 > 감성 한 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채화 같은 봄날이 간다  (138) 2024.04.24
물-멍 때리기  (148) 2024.04.22
사랑의 랑데뷰  (104) 2024.04.08
벚꽃엔딩  (94) 2024.04.06
봄이 슬픈 '봄까치꽃'  (113) 2024.04.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