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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라떼별곡

봄나들이

by 훈 작가 2024. 4. 9.

종잡을 수 없는 날씨입니다. 봄은 봄인데 봄이 맞나 싶습니다. 아침저녁으론 쌀쌀하니 초가을 같고, 한낮이 되어야 봄입니다. 며칠 전 지방자치 단체마다 벚꽃 때문에 머리가 골치를 앓는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벚꽃 없는 축제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비상이 걸렸다는 겁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피던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리지 않으니, 애타는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떡합니까, 누굴 탓할 일도 아닌데. 

지구온난화 탓이라 생각합니다. 기후변화는 오래전 얘기가 아닙니다. 벚꽃 개화 시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과값이 고공행진을 한지 한참 되었습니다. 사과값이 폭등하다 보니 ‘금사과’라는 말까지 합니다. 사과 주생산지였던 대구·경북도 옛말입니다. 앞으로 강원도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사과 재배 농사를 육성한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모두 기후변화에 기인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그래도 봄인지라 벚꽃을 기다렸습니다. 봄나들이하기엔 벚꽃 구경이 적격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면 완연한 봄기운을 느끼게 됩니다. 따뜻한 햇살 아래 몽글몽글하게 핀 벚꽃을 보면 마치 봄의 요정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겨주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일까요. 벚꽃을 보는 사람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봄나들이에 가장 잘 어울리는 꽃이 벚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봄이 오면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우울해지고, 슬플 때가 있습니다. 원인이 뭔지 알 수 없지만, 사실입니다. 의외로 그런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우울증’이라고 하면 정신적으로 병이라는 느낌이 들어 말하기가 그렇습니다. 그런 현상이 우리가 말하는 ‘춘곤증’ 일지도 모릅니다. 몸도 나른하고, 기분은 축 처지고, 그냥 에둘러 봄을 타는가 보다 생각한 적이 많았습니다. 봄이니까 그런 거야 하고. 

봄이 유혹하지 않아도 봄에 이끌려 봄을 만나러 나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핑계 댈 게 없습니다. 혹시 그래서 우리 선조들이 ‘봄나들이’란 말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렴풋이 그런 생각이 듭니다. 홀연 ‘봄나들이’라는 말에서 옛 선인들의 지혜가 느껴집니다. 국어사전에 이 말이 없었다면 정말 섭섭했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농경사회에서 집안 살림과 농삿일에 바빴을 여자들에게 더 그랬을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말은 ‘봄나들이’지만, 사실 ‘꽃구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봄나들이란 표현은 막연하단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들이에 나서면 상큼한 봄바람도 살갑게 느껴집니다. 겨우 내내 움츠리게 했던 찬바람과는 격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부드러운 햇살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봄꽃을 구경하는 것만큼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봄나들이’의 진짜 의미는 ‘꽃구경’에 있을 것이고, 그 꽃이 벚꽃이란 생각이 듭니다. 

봄나들이를 핑계로 벚꽃 구경을 왔습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인가 봅니다. 미세먼지가 하늘을 가렸습니다. 시샘하듯 짙게 덮은 미세먼지가 좀처럼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맑은 하늘색만 드러나면 금상첨화인데. 벚꽃을 사진에 담으며 은근히 속으로 부아가 났습니다. 벚꽃은 더할 나위 없이 분위기가 좋은데…. 갈수록 기후변화 여파로 봄이 몸살을 앓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더 안타까운 건 따로 있습니다.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무색하게 꽃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원래 꽃이 지고 잎이 나오는데, 꽃이 지기도 전에 잎이 나옵니다. 기후변화로 생육환경이 달라지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아침저녁으론 쌀쌀하니까 꽃도 빨리 떠날 채비를 서두르는 겁니다. 꽃으로서의 삶이 짧아져 이 봄이 슬픕니다. 이러다 벚꽃이 우울증에 걸리면 어떡하지. 점점 봄이 이상해져 갑니다.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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