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금계국이 노란 물결을 이루는 아침입니다. 둑 언저리는 다른 풀꽃이 발 붙일 틈 없이 금계국이 점령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녀석들은 원래 토종이 아닙니다. 북미가 원사진인 금계국은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원예용으로 재배되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 꽃길 사업 조성에 보급되어 전국에 심어졌다는 겁니다.
황금 닭을 닮은 국화라는 해서 ‘금계국(金鷄菊)’으로 부릅니다. 다년생 꽃으로 번식력이 강해 어느 곳에서나 자라 황금빛 군락을 이루며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입니다. 환경부에서는 이꽃을 생태교란종으로 지정한 상태입니다. 금계국은 종자뿐만 아니라 뿌리로도 번식하여 다른 식물들이 자라는 공간까지 밀어내고 그 자리를 독차지해 버립니다.
금계국을 보노라면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이 말은 "흩어짐"의 뜻으로, 팔레스타인 이외의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이나 유대인 공동체를 이르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나라 없이 떠도는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다 팔레스타인을 쫓아내고 지금의 땅에 정착하여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금계국이 우리 토종 식물을 쫓아내고 번성하고 있습니다. 환경부가 생태교란종으로 지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금계국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엄밀히 보면 이 땅에 사는 모든 꽃이나 풀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 다니는 떠돌이들입니다. 다만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칠 뿐입니다.
금계국이 생태교란종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만든 자의적인 기준이고, 자의적인 해석입니다. 꽃의 관점에서는 어딜 정착해 뿌리내리고 살든 다 같은 흙일 뿐입니다. 원산지가 북미라고 하는 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이지, 꽃의 관점에서는 전혀 관계없는 일입니다. 말 그대로 금계국도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겁니다.
그럼에도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이 떠오른 이유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벌어지고 있는 가자지구 전쟁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땅은 원래 팔레스타인 땅입니다. 그들이 토종입니다. 그런데 마치 금계국처럼 그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세계 각지에 흩어졌던 유대인을 상징했던 디아스포라가 독립 국가로 탄생한 겁니다.
시간은 다양한 역사를 만듭니다. 팔레스타인의 땅을 이스라엘 땅으로 만들었듯이 금계국이 토종 식물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생태계의 변화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릅니다. 지구촌은 오래전부터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구 한쪽에선 홍수로 물난리를 겪고 있고, 다른 한쪽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노란 물결이 일렁이는 금계국이 팔레스타인을 밀어냈던 디아스포라(Diaspora)가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기후변화로 생태계는 혼란스럽습니다. 생태교란종이라 말만 하지 말고 우리 토종 식물이 더 이상 쫓겨 나가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애꿎은 금계국 때문에 토종 식물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