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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카멜레온 같은 꽃

by 훈 작가 2024. 6. 24.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우리가 잘 아는 카멜레온은 주변 환경에 따라 몸 색깔을 바꿀 수 있는 동물입니다. 카멜레온의 변신은 피부에서 단순히 색소의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빛의 파장별 반사 패턴이나 간섭 등과 같은 고도의 광학적 특성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편안한 상태에서는 초록색을 띠지만, 동요하거나 감정의 기복이 생겨서 피부에 힘이 가해지면 노랑, 주황, 빨간색을 띠도록 변화하게 된다는 겁니다.
 
숲에서 생활하는 카멜레온은 일조량이 적을 때는 주로 어두운 녹색을 띠는데 이는 추워서 빛을 많이 흡수하기 위한 것이고, 반대로 일조량이 많을 때는 밝은 녹색을 띠게 되는데 이는 더워서 빛을 많이 반사하기 위한 거랍니다. 모두 생존을 위한 본능입니다. 한편으로 카멜레온의 색깔은 그들이 두렵거나 화가 났음을 나타내는 감정적 행위이기도 하지만, 같은 종끼리는 의사소통의 한 형태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위장의 목적도 있지만, 짝을 찾기 위한 구애의 표시로 몸 색깔을 바꾸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평소 안정적인 상태에서는 초록색이지만, 이성을 유혹할 때는 노랑 또는 빨강으로 변하고, 화가 나면 검은색으로 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애초 카멜레온 피부의 색은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수단이었지만, 오랜 세월 진화를 거치면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생존수단이 된 셈입니다.

카멜레온 같은 꽃이 있습니다. 수국이 그런 꽃입니다. 수국은 처음 필 때 연한 보라색이었다가 푸른색으로 변하고, 다시 연분홍빛으로, 피는 시기에 따라 색깔을 달리합니다. 이는 토양의 산도(pH)에 따라 연두색이 흰색, 분홍, 빨강, 청색으로 다양하게 변한다는 겁니다. 토양이 중성이면 흰색, 산성이면 청색, 알칼리성이면 붉은빛으로 변하는 데, 마치 카멜레온이 환경에 따라 변신하는 거와 닮았습니다.
 
수국의 꽃말은 차갑습니다. 냉정, 냉담과 무정, 변덕, 변심이다. 부정적인 꽃말만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집안에 장식하거나 선물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수국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원예 업계에서는 ‘진실한 사랑’이나 ‘처녀의 꿈’, ‘진심’ 같은 긍정적인 꽃말을 만들어 보급하려고 노력을 기울인 꽃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신부의 부케로도 쓰이는데 수국의 꽃말에 담긴 의미가 바로 ‘처녀의 꿈’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수국의 꽃말을 떠올리면 많은 사람이 ‘변심’이라 말합니다. 이유는 앞에 언급한 내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야속하게도 꽃의 아름다움과 관계없이 사람들은 ‘변심’이란 꽃말을 붙였습니다. ‘변심’이란 말을 떠올리면 사랑하는 마음이 변해 연인과 헤어지게 되는 상황이 연상케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랑에 대한 배신의 그림자가 떠올라 슬픈 낭만의 서사가 있을 것 같은 꽃으로 보여 애틋한 느낌도 듭니다.

카멜레온이나 수국이나 변신의 이유는 단지 생존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랑의 변심은 속세에서만 일어납니다. 생존 때문에 일어나는 사랑의 변심은 없을 겁니다. 흔히 말하는 사랑이 변했다는 말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는 건 사람의 마음입니다. 사랑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변함없이 강물처럼 흐를 뿐입니다. 사랑은 영원히 인간의 삶 속에 살아 숨쉬는 가치입니다.
 
수국은 죄가 없습니다. 억울할 뿐입니다. 생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색을 바꿀 수밖에 없을 뿐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꽃말을 ‘변심’이라 붙였습니다. 마치 사랑 때문에 변심한 것인 양 오해를 살 만한 꽃말을 붙인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수국의 꽃말은 ‘변심’이 아니라, ‘변신’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아마도 ‘변심’이라 꽃말을 붙인 사람은 사랑이 변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에게 영화 속의 한 대사를 꼭 말해 주고 싶습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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