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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행복, 그대와 춤을

호수가 만든 선

by 훈 작가 2024. 7. 11.

호수의 수면이 많이 낮아졌습니다. 여름철 장마를 대비해 미리 물을 뺏기 때문일 것이고, 또 하나는 5~6월 모내기 철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느라 물을 많이 방류해서 일 겁니다. 수면이 낮아지다 보니 물아래 잠겨져 있던 호수의 멋진 S-라인이 살짝 드러났습니다. 이때가 아니면 볼 수 대청호의 섹시한 몸매입니다.
 
호수는 늘 통통한 모습이었습니다. 매력적인 곡선 포인트가 없어 사진포인트를 잡을 만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비만에 가까운 호수의 허리선은 사진을 찍어 봤자 별 볼 일 없기 때문입니다. 사진에 대한 눈높이는 생각보다 높습니다. 매력 포인트가 없는 호반의 풍경에 쉽사리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는 이유입니다.
 
사진가에게 널리 알려진 슬픈 연가 촬영지 근처 호반에 잠시 멈추었습니다. 물 빠진 호반의 S-라인을 보니 아리따운 아가씨의 몸매가 연상됩니다. 여름철은 흔한 말로 몸매가 패션일 수밖에 없는 계절입니다. 싫든 좋든 상관없이 몸매를 드러내야 하니까요. 몸매에 자신 없는 젊은 여자라면 스트레스를 받을거란 생각이듭니다.
 
물 빠진 호반의 곡선이 마치 군살을 뺀 것처럼 여자의 허리선처럼 보여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S-라인 구도를 만들고 WB(화이트밸런스)를 조절해 가며 몇 장 찍었습니다. 그리고 호수 안쪽으로 더 들어갔습니다. 전망대 포인트에 도착하니 곡선과 어우러진 호반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경사면을 이루고 있는 곡선이 겹겹이 물결처럼 무늬를 만든 모습도 아름다워 보입니다. 같은 선이라도 형성된 지층의 색깔 때문에 더 선명하게 보여 멋지게 보였습니다. 단조로운 느낌이 들지 않은 데다 적당히 곡선미가 조화를 이룬 탓입니다. S-라인을 그리듯 반복되는 패턴이 이색적인 호반의 모습입니다.
 
색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곡선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직선보다 곡선이 아름답게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사물의 윤관을 이루는 선은 직선과 곡선밖에 없습니다. 두 선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사물의 모양을 만듭니다. 하지만 직선이 만든 사물의 모습보다 곡선이 만든 사물의 모습이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S-라인 몸매를 만들려는 여성들이 헬스장을 많이 찾는 시즌입니다. 몸매가 패션인 계절이니만큼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매력적인 S-라인을 만들려면 대청호가 수문을 열고 물을 빼듯 군살을 빼야 할 겁니다. 만족스러운 몸매를 만들고 치장하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해야 사진은 아름답습니다.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군살은 빼고 적당히 근육을 더 해야 보기 좋습니다. 대청호반이 만든 아름다운 곡선미도 그래서 아름다워 보이는 듯합니다. 6월 대청호반의 곡선미는 오로지 뺄셈의 미학(美學)입니다. 불필요한 것을 빼야 인생의 곡선도 아름다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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