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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행복, 그대와 춤을

무아지경(無我之境)

by 훈 작가 2024. 7. 23.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뭔가에 몰입할 때가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업무에 집중할 때도 있고, 소설을 읽을 때도 재미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공부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해야 할 때 잘 됩니다. 반면 아이들은 컴퓨터게임 할 때도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철없는 어른들이 도박에 빠졌을 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도박은 아니지만 장례식장에서 밤새 고스톱 치던 생각이 납니다. 으레 상갓(喪家) 집에 조문 가서 재미로 치곤 했습니다. 화투장을 보고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소주잔 기울이며 즐기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아주 친한 친구 사이라면 밤을 새워 가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게 우정이고 예의라고 여겼던 때도 있었습니다.
 
몰입은 어떤 것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얼마만큼 몰입하느냐에 따라 삶의 행복이 결정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결과가 부정적인 상황을 가져오게 할 때는 ‘몰입’이란 말을 쓸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중독에 불과합니다. 게임이나 도박 또는 마약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몰입’은 삶의 행복을 동반하지만, ‘중독’은 삶을 파멸로 이끌게 만듭니다. ‘몰입’은 어떤 일에 푹 빠져들어 시간의 감각조차 상실하게 만드는 행복한 경험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그 순간 극도의 쾌감을 느끼고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감을 느낍니다. 결과적으로 진정한 몰입은 행복을 누리는 출발점입니다.
 
연꽃을 담으러 나오면 습관적으로 벌과 연꽃이 어우러진 장면을 찍기 위해 시선을 집중합니다. 그리고 그 대상을 찾게 되면 모든 신경을 렌즈에 모읍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초점을 맞춘 다음, 벌의 움직임에 몰입하게 됩니다. 벌이 내 마음 같지 않게 계속 움직이니 마음에 드는 구도의 사진을 찍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몰입은 기다림과 인내의 싸움입니다. 이때만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빠져들게 됩니다. 남들이 이런 모습을 보면 미친 짓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몰입에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욕심 중 단 하나만 포기하지 않고 내려놓습니다. 그것은 순간 포착을 잘 담아내는 것 뿐입니다.

본 이미지는 인터넷에서 내려 받았음.

망설이던 벌이 연꽃의 유혹에 빠져든 모양입니다. 사랑은 밀회의 시간입니다. 몰래 숨어서 단둘이 나누는 사랑이 스릴넘치고 짜릿할 겁니다. 나는 그 장면을 찍느라 사진에 빠져듭니다. 벌과 꽃이 사랑에 몰입하며 쾌감을 나누는 동안 나는 사진찍는데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서로 몰입하는 쾌감의 차이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몰입’이란 단어가 가져다주는 행복은 같을 겁니다.
 
무아지경이란 말이 있습니다. 본래 불교에서 유래된 말이지만, 사전적 의미는 ‘마음이 어느 한 곳으로 온통 쏠려 자신의 존재를 잊고 있는 경지’를 이르는 말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극치의 쾌감을 느꼈을 때 흔히 쓰는 말입니다. ‘몰입’이란 말과도 맥을 같이 하는 말입니다. 무아지경의 행복은 바로 ‘몰입’에서 시작합니다.
 
무아지경의 행복은 육체를 움직이는 마음의 껍질을 벗어던질 때 다가옵니다. 즐거움에 몰입하되 이기적인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을 뛰어넘는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무아지경의 경지에 이른다고 합니다. (貪), (瞋), (癡)를 내려놓고 몰입해야 합니다. 무아지경의 핵심은 이를 전제로 얻어지는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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