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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장독대

by 훈 작가 2024. 8. 6.

갑자기 추억을 쫓아갈 때가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옛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때입니다. 추억이 머무는 곳에 다다르면 리트머스 종이에 젖어드는 것처럼 먼 아날로그 시절의 한 장면이 가슴을 젖게 합니다. 아련한 그 장면이 서서히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희미한 동영상이 스크린에 펼쳐집니다. 화면 속에 시골 마을이 보입니다. 옹기종기 이마를 맞대고 짚으로 이엉을 만들어 새끼줄로 엮은 초가지붕이 정겹게 다가옵니다.
 
고향마을에는 기와집이 딱 한 채 있었습니다. 우리집은 초가집이었습니다. 지금은 민속촌에나 가야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입니다. 이런 풍경과 빼놓을 수 없는 게 장독대입니다. 장독대가 없는 집이 없었습니다. 시골 아낙네들은 항아리가 있는 장독대를 신주단지 모시듯 지극정성이었습니다. 장독대에는 된장, 고추장, 간장, 김치 등 크고 작은 항아리가 적어도 10개 이상 있었을 겁니다.
 
세상은 아날로그 시대를 밀어냈습니다. 그 자리에 디지털 문명이 차지했습니다. 이때부터 항아리가 차지하고 있던 장독대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주거문화가 아파트로 바뀌면서 장독대는 설 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항아리는 신세대 주부들의 사랑을 받지 못해 버림받았습니다. 대신 냉장고와 김치냉장고가 주방에 들어왔습니다. 장독대는 구시대 유물처럼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장독대가 사라진 것은 결코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대대로 내려오던 한 집안의 맛이 사라진 겁니다. 할머니에게서 엄마로, 다시 며느리로 이어져 오던 집안 전통의 손맛이 사라진 겁니다. 예전에 한 집안의 음식 맛을 보려면 먼저 장맛을 보라는 말을 이젠 더 이상 들을 수도, 맛볼 수도 없게 된 겁니다. 전통의 맛이 사라지고 획일화된 가공식품이 우리의 입맛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엄마표 음식이 있었고, 엄마의 손맛이 있었습니다. 객지 생활할 때도 항상 그 맛이 그리웠습니다. 그 맛이 생각나서 음식을 잘한다는 맛집에 가서 먹어 보면 그 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말마다 집에 오곤 했었습니다. 밥상에 김치 하나만 있어도 꿀맛이었습니다. 엄마의 손맛의 비결은 장독대에 있었습니다. 보물창고 같았던 장독대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신성한 영역이었습니다.
 
장독대는 대대로 집안의 가장 신성한 곳이었던 이유는 또 있습니다. 장독대가 소박한 신앙의 영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없었던 어머니에게 장독대는 예배당이었고,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동네 우물에서 물동이로 물을 길어오면 제일 먼저 정한수를 올리고 천지신명께 치성드리던 곳이 바로 장독대였습니다. 그게 어머니의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습니다.
 
장독대 옆에 심었던 봉숭아꽃, 채송화꽃이 눈에 선합니다. 개구쟁이 친구들과 숨바꼭질할 때면 장독대 뒤에 숨곤 했었습니다. 아련했던 추억과 어머니의 그리움만 남기고 장독대는 서서히 세월 속의 무대 뒤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젠 국어사전에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는 운명에 처해 있는 장독대. 정겨우면서도 한편으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시대 유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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