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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

비상 착륙

by 훈 작가 2024. 8. 12.

홍점알락나비의 최종 목적지는 자귀나무꽃이었습니다. 중간 경유지인 배롱나무꽃에는 오전 12시가 조금 넘어 도착할 예정이었습니다. 당시 배롱나무꽃 주변은 비구름이 많고 오락가락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착륙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이따금 번개가 치기는 했지만, 비행에 베테랑이었던 홍점알락나비는 착륙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배롱나무꽃 주변에 기상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홍점알락나비는 예정했던 항로보다 약간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날았습니다. 예상보다 10~20분 늦어지더라도 안전하게 착륙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비행은 순조로웠습니다. 홍점알락나비는 비행메뉴얼대로 서서히 고도를 낮추었고, 곧 있을 착륙에 대비해 절차대로 점검하며 착륙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전 1230, 배롱나무꽃 관제탑은 홍점알락나비에게 활주로 착륙을 허가했습니다. 이에 나비는 속도를 줄였고, 고도도 관제탑의 지시에 따라 낮추었습니다. 번개가 쳤지만, 착륙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어서 괜찮을 것으로 여겼습니다. 회항할 기회가 있었는데 놓친 겁니다. 어느덧 나비는 배롱나무꽃이 보이는 높이까지 내려온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소나기는 그쳤고, 밝은 햇살이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왔습니다.
 
오전 12시 45, 홍점알락나비는 윈드시어의 영향권에 접어들었습니다. 윈드시어는 지상에서 가까운 위치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난기류 영향권입니다. 이에 휘말리면 급격하게 고도나 속도를 제어하기 어려워지고 몸체가 크게 흔들리게 됩니다. 홍점알락나비는 난기류를 직감했습니다. 비행 속도를 낮췄지만, 몸체가 흔들리며 급강하를 시작했습니다. 이어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고 정상적인 착륙 고도를 벗어나 버렸습니다.

홍점알락나비는 Go-around(착륙 복행, 다시 상승해 비행하다 착륙을 시도하는 것)를 외치며 시도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난기류에 휘말린 나비는 고도를 높이지 못하고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어지럽고, 두통과 함께 근육이 경련이 일어나더니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왔습니다, 조금 전까지 괜찮았던 의식까지 멍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이러다 추락해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흔들리는 몸체를 바로 잡으려고 날개에 힘을 주었습니다. 날개를 활짝 펴야만 하강 속도를 늦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순간 몰아치는 난기류가 너무 강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소용돌이치는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예상 활주로를 벗어나 먼 곳으로 날아가면서 점점 지상에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마지막에 온 힘을 다해 날개를 펼치며 중심을 잡고 착륙했습니다. 비상착륙이 성공한 순간입니다.

홍점알락나비 한 마리가 날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녀석이 춤을 추며 곡예 비행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허둥지둥 대더니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듯 떨어졌습니다. 충격을 받고 정신을 잃었는가 하고 가 보았습니다. 녀석이 힘없이 움직입니다. 살아있긴 한데 기력이 없어 보입니다. 아마도 가고 싶은 목적지로 가다가 힘에 부쳐 내려온 모양입니다. 예정에 없던 비상착륙이 아닐까, 여겨져 상상력을 펼쳐 잠시 조종사가 되어 보았습니다.
 
순항하던 비행기가 갑자기 비상착륙을 하려면 항공유를 모두 버리고 무게를 줄여야 한다고 합니다. 안전한 착륙을 위해서 정상 항로를 벗어나 민간에게 피해가 없도록 버리고 다시 항로로 돌아와야 하는 겁니다. 인생이란 여정도 예정된 항로를 비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순항 중에 갑자기 난기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땐 자신을 비우고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와 비상 착륙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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