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짙은 창밖에 눈이 내립니다. 나갈지 말지 망설여집니다. 모래시계 속에 묻힌 동심이 지금의 나를 머뭇거리게 만듭니다. 그땐 어려서 눈 오는 밤이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무서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망설일까. 어른인 나의 영혼을 붙잡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나잇값 아니면 체면일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야심한 이 밤에 카메라를 들고나가 사진 찍는 게 도대체 뭐라고, 혹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주민이라도 만나면 날 어떻게 생각할까. 자꾸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까닭은 동심이 사라진 어른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밖을 보며 어떡할까, 주저하며 눈 오는 겨울밤을 마냥 보고만 있습니다.
고민 끝에 카메라를 챙겼습니다. 사실 별것도 아닌데 망설였습니다. 마음속에선 나가고 싶은데, 남이 날 어떻게 볼까, 하는 시선 때문에 소소한 나의 행복을 포기하기 싫었습니다. 눈 오는 밤을 사진을 찍으며 즐기고, 안 즐기고는 나의 선택입니다. 행복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그걸 포기하는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눈 오는 겨울밤에 난 우주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밤하늘에 눈이 가득합니다. 대설주의보가 내려서인지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눈이 쌓였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가로등 불빛 아래 날리는 은빛 눈송이가 하얀 나비처럼 춤을 춥니다. 카메라를 들어 그 빛의 향연을 한 컷 한 컷 담아 봅니다. 까만 밤은 우주, 하얀 눈은 별이 되는 순간입니다.
눈 내리는 겨울밤, 어릴 적 가슴에 품었던 호기심을 안고 난 우주여행을 떠납니다. 수많은 별이 지구를 찾아왔거든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밤, 가로등 아래에서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면 됩니다. 우주에 머물던 수많은 별이 쏟아집니다. 그 순간 난 지구별을 떠나 신비로운 우주로 여행을 떠납니다.
어릴 적 기억이 떠오릅니다. 고향집은 초가집이었죠. 어린 꼬마는 한 여름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 밤하늘의 별을 자주 봤습니다. 여름 방학이면 거의 날마다 그랬죠. 마땅 한구석엔 모깃불에서 나오는 연기가 온 집안 가득히 퍼졌죠. 그때 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반딧불처럼 깜빡이는 꼬마 별들이 내게 날아왔습니다.
별빛에 빠져들다 보면 난 어느새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우주비행사가 된 것처럼 환상여행을 떠납니다. 우주로 날아가 보면 신비스럽습니다.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 사이로 마음껏 날아다니면 어느새 영혼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다 잠이 듭니다. 날이 새기 전까지 나는 꿈속에 잠겨 우주여행을 즐기곤 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 그 순간처럼 느껴집니다. 하염없이 달려드는 함박눈이 어릴 적 고향집 마당에서 한 여름밤에 만났던 별들처럼. 그땐 별들이 어린 동심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면 지금은 쏟아지는 솜사탕 같은 눈송이는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비록 벼들이 사라진 겨울밤이지만 대신 함박눈이 있어 포근한 겨울밤입니다.
동심 속에 머물던 추억을 재소환한 눈이 새롭습니다. 사실 누구나 어린 시절 겨울이면 눈 오길 기다렸던 추억이 있을 겁니다. 다만 내가 어릴 적엔 전깃불이 없어 밤에 내리는 눈은 반갑지 않았습니다. 밖에 나가 놀고 싶어도 캄캄한 밤이 야속했을 뿐이죠. 그래도 아침이 빨리 오길 기다렸죠. 일찍 일어나 눈사람 만들 생각에.
그때는 즐기지 못했죠. 눈 오는 겨울밤을. 물론 우주가 무엇인지도 모를 때였고요. ‘우주여행’ 지금이나 그때나 현실이 아닌 상상의 영역이죠. 하지만 가로등 불빛과 어우러진 눈 사진을 찍으며 난 그 안에 작은 우주 공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장의 사진이지만, 감성의 영역으로 받아들이면 상상이 현실처럼 느낄 수 있는 작은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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