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생은 여행이다/터키

비운(悲運)의 황태자

by 훈 작가 2023. 3. 23.

 

비운의 황태자 ‘마호메트 오르한’의 슬픈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역사의 현장에 와 있다. 가이드는 역사의 시계를 되돌렸다.

1923년 3월 3일 자로 터키 공화국이 출범한 후 오스만 왕가에는 커다란 시련이 닥치게 된다. 그것은 모든 왕족에게 내려진 추방령이다. 15세의 어린 왕자 '마호메트 오르한'은 그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파악하게 된다. 2명의 경찰과 경시총감이 눈물을 글썽이며 종이 한 장을 어린 황태자에게 건네주면서

 “저를 용서하십시오. 왕자님, 서명을 부탁드립니다.” 

이제 막 학교에서 돌아와 자전거를 타려던 어린 황태자는 종이에 적힌 내용을 채 읽지도 못하고 서명합니다. 24시간 안으로 떠나라는 이 명령서는 왕족들에게 어떠한 이유도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재산은 단 한 푼도 가져갈 수 없다는 단서가 붙어있었죠. 


1923년 3월 5일 왕족들은 기차와 배에 실려 이날 밤 안으로 국경을 넘어야 했습니다. 다만, 탄 무라트 5세의 딸이 홍역을 앓고 있어서 20일간 출발이 연장된 것 한 가지를 제외하고 어떠한 예외도 없었습니다. 이로부터 68년 동안 고국 땅을 밟지 못하는 기약 없는 긴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오스만제국의 왕자로서 그가 서 있어야 할 조국의 땅이 없습니다. 망명 생활을 하던 왕자는 이곳저곳 신세를 지다가 드디어 17세가 되자, 그는 누구도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새로운 나라로 가기로 결심하고 주머니에 단돈 8프랑을 넣고 브라질로 가게 됩니다. 주석공장 직공, 선박의 화물 나르는 인부, 커피를 포장하는 포장 공 등 닥치는 대로 그는 고난 찬 세월을 보내다가 이집트로 오게 되는데 이집트의 왕자들이 그를 알아보고 자동차 한 대 살 돈을 빌려주게 됩니다. 그는 그 차로 장거리 택시 기사로 일하게 되는데,. 그러다 어느 날 신문에 <오스만 왕자, 택시 기사 되다>라는 기사를 보고 자동차를 팔아버립니다. 


1960년에 들어와서는 자동차 배달부가 되는데, 각국에서 오는 고객이 새로 사들인 자동차를 배달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의 침실은 항상 자동차 뒷좌석이었죠. 그는 긴 세월 동안 자동차 운전대와 씨름하며 보낸 후 57세가 되던 해 파리에 있는 <미국전쟁기념회>에 일자리를 얻어 미군 용사의 묘지를 안내하는 일을 하게 되고, 왕자는 그 일로 1974년까지 매달 190달러의 연금으로 생활하데 되죠. 

그가 말하기를

“나는 여러 직업을 가졌던 것에 대해 꽤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소. 어떤 일이든 나는 해 내었소. 나는 그동안 땀으로 번 돈으로 살았고, 내 주머니에 부당한 돈이 들어간 적이 없었소. 동정이나 팁조차 안 받았고 누구에게도 진 빚이 없소. 나는 오스만제국의 명예를 더럽힌 일이 없소. 그리고 나의 자식들에게 제국의 마지막 왕손이라는 말을 물려주기 싫어 결혼도 하지 않았소.” 


그가 추방당할 때 터키 땅을 떠난 남자 왕족은 50년, 여자는 28년 안으로 귀국을 할 수 없게 법을 제정하였고, 터키 국민의 자격마저 빼앗아 갔죠. 50년이 지나자 '마호메트 오르한'은 타국에서 유랑하면서도 끊임없이 귀국 탄원서를 터키 정부에 보냈지만, 정부는 이 탄원서를 계속해서 외면합니다. 

1992년 Turgut Ozal 대통령이 드디어 그의 방문을 짧게 허용하여 이제 꿈에도 그리던 이스탄불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살아서 조국을 밟고자 했던 그의 꿈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왕족 중에서 가장 장수하시는 편인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셨는지?” 

라고 기자가 질문을 하자

“나는 조국을 보기 전에는 죽을 수가 없다는 일념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어떻게 소일하고 계셨습니까?”

“아침마다 공항 라운지로 나가서 터키 커피를 마시며 조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바라보는 게 내 일과입니다. 나도 저렇게 마음대로 오갈 수가 있을까? 했는데 이렇게 죽기 전에 보스포루스를 볼 수 있게 해 준 정부에 감사드립니다.” 

터키 국민은 <이제 그가 연로하니 그의 여생을 터키에서 마감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정부에 빗발치듯 청원했지만, 황태자는

“아닙니다. 나는 내 조국에 한 번도 세금을 낸 일이 없습니다. 염치도 없이 어찌 나의 여생을 부탁할 수가 있겠습니까.” 

국민에게 감사 인사를 연발하고 5박 6일 일정의 방문을 마치고 망명지인 프랑스 남부 도시 니스(Nice)로 떠나죠. 조국에 체류하는 동안 눈시울이 한 번도 마를 새가 없었던 83세의 황태자.


자,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로부터 꼭 1년 뒤입니다. 터키 일간지 신문이 일제히 그의 사망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가 자기 숙소 침대에 반듯이 누워 숨져있는 것을 이틀 후에서야 발견하게 된 거죠.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는 공항 라운지의 커피숍에서 그의 모습이 이틀째 보이지 않자 한 웨이터가 왕족의 친척에게 알려주어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터키 기자들이 그의 숙소에 달려가 보니 목욕탕에 빨래를 담가놓은 채로…. 오스만제국의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마지막 황태자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이야기(비운의 황태자 '마호메트 오르한)를 듣고 나니 슬픔이 가슴속에 밀려왔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만, 패자의 삶까지 짓밟는 비정함이 있다. 권력의 냉혹함은 과연 인간의 속성까지도 외면하는 것인가? 사람은 사람다운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정치가 지배하는 권력이다. 그 슬픈 애환이 남아 있는 돌마바흐체 궁전은 화려하다. 하지만, 그 뒤에 오스만제국의 흥망성쇠가 있다

'인생은 여행이다 > 터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 소피아 성당  (146) 2024.03.05
낯선 행성 여행 '카파도키아'  (158) 2024.02.23
열기구 투어  (154) 2024.02.18
갈라타 다리와 골드 혼(Golden Horn)  (11) 2023.08.11
피에롯티 언덕  (0) 2023.03.1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