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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르파티 : 나도 작가다/장편소설48

별을 죽인 달(12) 분노 김재형 변호사는 각 언론사 법조팀과 사회부에 기자회견 계획을 알렸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 여성의 전화 등 유관 단체 관계자들과는 직접 만나 지원을 요청했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비롯한 인권변호사 모임을 이끄는 관계자들과도 만나 Anna 문제에 뜻을 같이해 달라고 요청했다. 여성 법조인 모임 선후배들과도 접촉하여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유일하게 여당 소속 여성 정치인들만 Anna 문제에 대해 미온적이었다. 그들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만남 자체를 피했다. 그나마 야당 여성 정치인들이 관심을 보이기는 했으나 그 숫자가 많지 않았다. 기자회견 당일 Anna는 오전 일찍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김재형 변호사가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그녀는 질문에 응답하는 형식.. 2023. 7. 15.
별을 죽인 달(11) 성격 Anna가 아침 일찍 일어나 원두를 갈아 내려받은 커피 한 잔을 들고 의자에 앉았다. 노트북이 부팅되는 동안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커피 향이 가슴에 스며들었다. 순간 연인이 부드럽게 입맞춤해 주는 듯 눈을 감았다. 커피 향이 연인의 향기처럼 마음을 촉촉하게 젖게 해 주었다. 어제 밤늦게까지 작업한 문서 파일을 화면에 띄웠다. 터치패드를 움직여 첫 페이지로 이동시켰다. 중간중간 오타를 수정하며 문장을 다듬었다. 아침 식사 전 마무리하고 싶었다. 반복해서 몇 번 읽어 봐도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글쓰기 작업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정복하기 어렵다. 어려워도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 밤늦게까지 끙끙거리며 작업을 끝낸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일이란 미루면 미룰수록 쌓이게 마련이다. 어차피 .. 2023. 7. 13.
별을 죽인 달(10) 번민(煩悶) 김재형 변호사로부터 1심 재판 패소 소식을 들었다. Anna는 어떻게 소송을 이어갈지 막막했다. 일단 항소를 결정했지만 2심 재판도 전망은 부정적이다. Anna는 자신이 이길 수밖에 없는 승부인데 현실은 그 반대다.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렵다. 정말 세상이 왜 이런 것일까? 판결문을 보고 Anna는 대한민국 사법 정의를 의심했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른 사법부의 정의가 겉으로 보기에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 정의를 기만하며 위협하고 있는 그림자가 장막에 가려져 있다. 그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민주주의를 우롱하는 의심이 든다. 정의롭지 못한 나라다. 판결문에 드러난 표현 중에 ‘… 정황상 일부 피의사실이 인정될 소지가 있기는 하나 이를 증빙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하.. 2023. 7. 11.
별을 죽인 달(9) 언쟁(言爭) “Anna!, Anna!” 짙은 안갯속에서 헤매고 있다. 희미하게 Anna가 보였다. 손을 뻗어 딸을 잡으려 하는데 닿을 뜻 하면서 잡히지 않았다. “Anna! 제발 거기 서.” 녀석은 아무런 말이 서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딸을 향해 달려가도 제자리다. 딸의 이름을 절규하듯 불렀다. 두 팔을 벌려 소리쳤다. “Anna!, Anna!” Susan은 맨발로 달렸다. 날개를 단 듯 Anna가 안갯속으로 날아간다. 그녀가 벼랑 끝에서 몸을 날렸다. Anna는 안 보이고 그녀의 몸만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흔들림이 느껴졌다. 몸이 젖은 빨래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엄마! 엄마!” Anna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 차려, 엄마!” 희미하게 보이던 Anna의 얼굴이 조금씩 선명해졌다. 평소와 달리 .. 2023. 7. 9.
별을 죽인 달(8) 어색한 만남 Susan은 김재형 변호사에게 부탁한 편지가 잘 전달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마치 취준생이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듯 답장을 기다렸다. 아무리 세월이 지났어도 그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 석 자만 들어도 그는 분명 깜짝 놀라 만나자고 연락하고도 남을 인간이다. 승소하기 어렵다는 것은 김 변호사를 통해서 재차 확인한 셈이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로 오기 전 동생 은영을 통해서 무모한 소송이라 전해 들었다. 동생은 소송에 대해 객관적인 상황을 언니에게 이메일을 통해 전하며 되도록 이른 시일 내 Anna를 설득해 미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Susan은 서울에 온 후 줄곧 딸과 함께 보냈다. Susan은 어제저녁 식사를 하면서 오늘 하루는 쉬고 싶다고 딸에게.. 2023. 7. 7.
별을 죽인 달(7) 변호사 승용차가 반포대교를 건넜다. 차가 서울중앙지방법원을 지나 교대역 사거리에서 우회전했다. 모녀가 탄 차가 이면도로로 접어든 후 한 건물의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지하 1층에 주차 공간이 없자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Anna는 차를 엘리베이터 연결 복도 가까운 곳에 주차했다. 변호사 사무실은 10층 복도 끝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Anna가 먼저 사무실로 들어갔다. 박 사무장이 Anna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가 “잠깐만요.” 하면서 변호사 집무실로 들어갔다. 안경을 쓴 여자가 나오더니 Anna를 포옹하며 등을 토닥거려 주며 맞이했다. “자, 들어갑시다.” 그녀가 모녀를 집무실로 안내하며 들어가 자리를 권했다. “그간 어떻게 지냈어요?” “본의 아니게 다른 때 보다 방콕 생활 좀 했습니다.” “.. 2023. 7. 5.
별을 죽인 달(6) 한(恨) “안녕하세요. 저 Anna입니다. 변호사님!” “Anna 씨! 지난번 보니까 매우 힘들어 보이던데 좀 어떠세요?” “괜찮습니다. 변호사님!” “말은 그렇게 하셔도 아주 힘드실 거예요. 어차피 어렵고 힘든 싸움이지만 힘내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변호사님!” “힘들 땐 언제든지 전화해 주시고 오세요. 제가 소주 한 잔 살 테니까.” “고맙습니다. 변호사님!” “혹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아무 일 없어요.” “뭔가 하실 말씀이 있는 거 같은데?” “다름이 아니라 어제 미국에서 어머님이 오셨어요. 그래서 인사 좀 드리고 싶은데 일정이 어떠신지 전화를 드렸어요.” “어떡하죠? 오늘은 지방 출장 변론이 있어서…, 내일은 시간이 괜찮은데.” “그럼, 내일 몇 시쯤 뵐까요.” “오후 2시쯤 어떠세.. 2023. 7. 3.
별을 죽인 달(5) 방해 공작 Susan은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어젯밤 마신 와인 탓인지 갈증이나 눈을 떴다. 침대에서 일어나 딸이 자는 모습을 보았다.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잠버릇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이불을 덮어 주고 나서 커피포트 옆에 놓인 생수를 컵에 따라 마셨다. 객실 창가로 가 커튼을 오른쪽으로 밀었다. 남산타워가 보였다. 어제저녁 일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어쩌다 딸이 이렇게 되었을까. 세상에 이런 악연이 또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괴로웠다. “엄마! 벌써 일어났어?” “어, 일어났니? 갈증이 나서 물 좀 마셨어.” “나도 물 좀 마셔야겠네.” “엄마가 갖다 줄게.” “아니야, 어차피 나도 일어나야 해.” Anna가 물을 마시고 Susan 앞에 앉았다. “엄마! 괜찮아?” “난 괜찮아.” “피곤하실.. 2023. 7. 1.
별을 죽인 달(4) 딸의 상처 멀리 조명 빛을 받은 남산타워가 등대처럼 보였다. 불과 두 시간 전만 해도 모녀가 식사하며 정담(情談)을 즐기던 곳이다. 시선을 돌려 아래쪽을 보았다. 소월길로 무언가에 쫓기듯 승용차 한 대가 빠르게 사라졌다. “엄마! 다 준비됐어. 근데 정말 엄마 놀라워.” “뭐가?” “와인잔까지 가져온 거 말이야.” “그게 뭐가 놀라워.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건 당연하잖아.” “그래서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는 건가.” “하하하… 모녀가 웃었다. “엄마! 우리 건배 하자.” “그래.” 와인잔 부딪히는 소리가 청아하게 호텔 방 안으로 퍼졌다. 두 사람이 와인을 한 모금씩 마신 다음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엄마! 다 이야기할게.” 청와대 경내에서 주말 테니스 시합이 있었다. 남·여 복식 게임에 우연히 .. 2023. 6. 30.
별을 죽인 달(3) 엄마의 비밀 보여야 할 별들이 보이지 않았다. 삭막하게 느껴지는 밤하늘이다. San Francisco에서는 만날 수 있는 별들을 왜 서울에서 왜 볼 수 없을까? 왠지 꿈과 낭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 밤하늘이 아닌 것 같다. 도심의 밤이 눈 뜨기 시작했다. 서울의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불빛이 퍼져나갔다. 수많은 별이 떨어져 꽃밭에 핀 것처럼 반짝였다. 그 위로 봄바람이 살짝 불었다. 지나간 바람이 날개를 접으면서 한강 변에 내려앉았다. 남산타워가 조명을 받아 한결 돋보였다. Anna는 Seattle 타워보다 더 멋진 것 같다고 Susan에게 말했다. Seattle 타워는 도심 한복판 빌딩들과 어울려 있어 돋보이지 않는데 남산타워는 산 위에 우뚝 서 있어 서울의 랜드 마크 같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 2023. 6. 29.
별을 죽인 달(2) 재회(再會) 입국장 문이 열렸다. 갑자기 공연무대에 오른 것처럼 한꺼번에 많은 사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딸을 찾느라 잠시 두리번거렸다. “엄마! 여기야, 여기.” 마중 나온 사람들 사이로 딸이 보였다. 카트를 밀고 나가자 Anna가 달려들며 가슴팍에 안겼다. Susan은 딸을 안으며 격한 감정을 달랬다. 모녀는 이산가족이 상봉한 것처럼 서로를 안고 떨어지지 않았다. “어디 우리 딸 얼굴 좀 볼까?” “오랜만에 엄마를 보니까, 눈물이 다 나올 것 같아.” Susan이 Anna를 살짝 밀치며 얼굴을 봤다. 딸의 눈가에 살짝 이슬이 보였다. Anna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우리 딸 새벽부터 엄마 마중 나오느라 잠도 못 잤겠네.” “내가 보고 싶어 오라고 했는데 그깟 잠이 문제야.” “엄마.. 2023. 6. 28.
별을 죽인 달(1) 회상(回想) 만감(萬感)이 교차한다. 30년 세월이 지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조국을 등지고 떠날 때 다시는 이 땅을 밟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세상이란 게 내 마음 같지 않다. 차라리 여행을 떠나는 마음이라면 작은 설렘이라도 있으련만… 왠지 모르게 마음만 어수선하다. 비행기가 뒤로 움직였다. 기내 창에 보이는 탑승동 건물 불빛이 멀어져 갔다. 기체가 활주로로 진입하기 위해 달렸다. 동체가 크게 원을 그리듯 선회하자 기내 창에 활주로 유도등 불빛이 잠깐 보이다 사라졌다. 이어 곧 이륙할 예정이니 안전벨트가 제대로 착용되었는지 점검해 보라는 기내 방송이 나왔다. 비행기 엔진에서 뿜어대는 굉음이 크게 들렸다. 동체가 활주로를 빠르게 질주했다. 좌석이 뒤로 기울면서 하늘로 뜨는 느낌이 들었다. 반짝이는 San .. 2023. 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