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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6) 마당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 있어?” 할멈이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문을 열었다. 용식 할멈이 왔다. “해가 중천인데 자고 있었어?” “들어와.” “술 마셨어? 소주 냄새가 나는데.” “어제저녁 하도 적적해서 월류정에서 조금 마셨어.” “아이고 나라도 부르지. 할망구야.” “요즘. 내 맘을 나도 모르겠어. 자꾸만 허전한 게. 이 나이에 내가 계절을 타나?” “아직도 청춘이구먼. 하하하.” “내일모레. 수요일. 읍내에서 KBS 전국노래자랑 녹화방송이 있다는 데. 같이 구경이나 가지.” “전국노래자랑?” “다들 송해 오빠 보러 가자는데.” “그럼 나도 가지 뭐.” 모처럼 단장하고 나섰다. 살구가 의아한 표정으로 할멈 뒤를 따라왔다. 동네 노인들도 한껏 멋을 내고, 버스정류장에 모였다. 마을이 텅 비.. 2023. 10. 22.
가을 안개(6) 2023. 10. 21.
베르사유 궁전 ‘질투(嫉妬)’라는 말은 시샘하고 미워한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서 남자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여자가 싫어하는 것을 말한다. 소유와 욕망의 관점에서는 다른 사람이 가진 무엇을 못 마땅히 여기며 탐을 내거나 싫어하여 마음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질투는 본능에 가깝다. 질투(嫉妬)는 남· 여 간의 애정 문제나 인간이 지닌 소유와 욕망은 인간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나 사극을 보면 질투는 여성들의 전유물로 많이 묘사되곤 한다. 남자는 여러 명의 첩을 두었고, 본부인과 첩들은 한 남편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갈등을 그리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역사 속에서 질투를 그린 드라마 중 대표적인 예가 장희빈이 아닐까, 싶다. 숙종은 자주 중전의 자리를 갈아치우는 우유부.. 2023. 10. 21.
살구(5) 추석에도 할멈은 설에 이어 혼자 성묘를 다녀왔다. 마음이 무거웠다. 고향을 누가 지키며 살 것인가. 시골은 고령화되어, 나이 육십이 면 청년이라는 말을 듣는 게 현실이다. 이대로 가다간 농촌이 사라질지 모른다. 걱정이다. 점심을 거른 채 TV를 켰다. 추석 특집 전국노래자랑이 방송되고 있었다. 유일하게 마음을 달래주는 프로였다. 재미있게 TV를 보는데, 살구가 멍멍 짖었다. 문을 열자 옆집 용식 할멈이 왔다. “뭐 해?” “뭐 하긴 송해 오빠 보고 있지. 용식이 올라갔어?” “고속도로 막힌다고 차례상 물리자마자 바로 올라갔어.” “할멈 아들은 안 왔어?” “부잣집 며느리 얻었다고 다들 부러워했는데. 장가가니까 소용없구먼.” “품 안에 자식이래잖아.” “예전엔 마을회관에서 윷놀이에다가 막걸리 한 사발 기울.. 2023. 10. 21.
가을 아침 2023. 10. 20.
살구(4) “벌초를 왜 힘들게 엄마가 해? 아들은 뭐 하고?” 딸은 남동생이 너무하다며, 할멈에게 투덜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올케가 엄마를 모시지 않으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왔다. “바빠서 못 온다는 데, 어쩌겠냐? 나라도 해야지.” 할멈은 아들을 감싸며 에둘러 핑계를 댔다. “장모님. 건강은 좀 어떠세요?” 저쯤에서 멈칫거리던 사위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늙은이 몸이 그렇지. 뭐. 그나저나 자네 사업은 어떤가?” “미국산이다. 호주산이다, 수입 쇠고기가 워낙 많이 들어와 힘들죠.” “큰일이네. 이러다 축산농가 밥이나 먹고살 수 있는지 모르겠어. 과수농가도 바나나다 망고다 해서 수입 과일 때문에 힘든데….” “장모님. 힘들긴 해도 거래처 절반은 농협 매장이라 든든한 편이에요.” “엄마. 사위가 지난달 한우영농조.. 2023. 10. 20.
이슬 2023. 10. 19.
런던 시청 어찌 보면 달걀모양 같기도 하고, 달리 보면 모터사이클 헬멧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배이더 헬멧(Darth Vader’s Helmet)과 비슷하다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건물은 바로 런던 시청사 건물이다. 시청사 건물은 노먼 포스터에 의해 설계된 건물로 2002년 완공되었다. 애당초 에너지 절약형 건물로 설계에 중점을 두었고, 건물 전체가 남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들어서 직사광선 피하면서도 채광 시간을 오래 받도록 했으며, 건물 모양도 둥글게 해서 통풍이 아주 잘 되게 했다고 한다. 이러한 설계 덕분에 40% 정도의 에너지를 절약이 된단다. 높이 45m에 10층 규모의 런던 시청사 건물은 사실상 어디가 정면이고 어디가 후면인지 구분이 안 된다. 건물의 .. 2023. 10. 19.
살구(3) 추석을 앞두고 할멈이 마루에 앉아 마당에서 놀고 있는 살구를 쳐다보았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냐? 네 팔자도 어지간하다. 어쨌거나 지난 일은 다 잊어. 알았지?” 조끼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 벨이 울렸다. “엄마! 별일 없지?” 며느리를 앞세워 왔다 간 아들이 뜬금없이 전화했다. “별일은 무슨 별일, 벌초하러 언제 올 거야?” 추석이 다가오니, 먼저 저승 가신 영감의 벌초도 하고, 성묘도 해야 할 것이므로 할멈이 물었다. “엄마! 요즘 누가 벌초를 해. 대행업체에 맡겨.” 아들이란 놈이 불효를 당연하게 투덜거렸다. “오기 싫으면 그만둬. 말하는 내 입만 아프지. 됐고, 추석에 올 거지? 손자 얼굴이라도 보여줘야지.” 할멈은 화가 났지만, 손자는 보고 싶었다. “….” 대답은 없고, 곁에 붙어 앉은 며느.. 2023. 10. 19.
억새밭 일몰 2023. 10. 18.
가을 무곡 춤을 춥니다.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는데 어디선가 리듬을 타고 와 가을바람이 춤을 춥니다. 우리는 그 리듬의 선율과 춤의 향연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습니다. 이처럼 자연이 만든 무대는 우리가 만든 무대와 다릅니다. 가을 들녘이 그려내는 풍경은 바람과 빛이 조화를 이루는 넓은 들녘으로 나와야만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롯이 가을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공연입니다. 춤은 오선지에 올려놓은 음표에 따라 박자와 리듬이 있어야 합니다. 홀로 추는 춤은 외로워 보여 가을을 쓸쓸한 계절로 만듭니다. 그래서 춤은 누군가와 같이 추어야 아름다워 보입니다. 과연 이 넓은 들녘에서 누가 바람과 함께 춤을 출 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애간장 녹이듯 시간은 더디게만 갑니다.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노.. 2023. 10. 18.
살구(2) “웬 개여? 장날 사 왔는가?” 할멈이 마실 오지 않으니, 용식 할멈이 왔다. “누가 버린 거 같아 데려왔어.” 앉을자리를 손바닥으로 쓸며 말했다. “잘 됐구먼 그려. 검둥이가 죽고 나서 많이 적적해하더니만.” 용식 할멈이 마루에 걸터앉아 살구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똥개는 아닌 거로 보이는데. 이름이 무엇이여?” “이름? 살구여.” “고향의 봄. 노래에 나오는 그 살구?” “맞아, 그 살구.” “듣고 보니 괜찮네.” “오늘 장날이라. 고추 좀 내다 팔러 갈 건데. 같이 가시려나?” 용식 할멈이 장에 갈 것인지 물었다. “지난 장에 갔다 왔어.” 할멈이 마른 고추 자루를 머리에 이고 장터로 나섰다. 살구가 촐랑촐랑 따라왔다. 늘 다니는 길인데, 장에 가는 날만큼은 멀게 느껴진다. 정류장에 도착해서야 할멈.. 2023. 10. 18.
억새 2023. 10. 17.
버킹엄 궁전 여왕(女王)이란 단어를 말할 때는 한 영역에서 정상에 오른 여자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피겨의 여왕 김연아라든가 골프의 여왕 박세리 같은 경우다. 여자 영화배우를 가리킬 때는 은막(銀幕)의 여왕이라는 관용적인 표현도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말하기도 하고, 장미꽃을 가리켜 꽃의 여왕이라고도 부른다. 영국은 국왕을 군주로 두고 있는 나라다.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는 왕이 있다. 아시아에서는 아랍권 일부 국가와 말레이시아, 태국, 일본이 있고 유럽에서는 영국을 포함하여 네덜란드, 덴마크, 스페인, 스웨덴 등이 있다. 대부분 상징적인 존재다. 한 마디로 ‘왕은 군림하되 통치는 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지난해.. 2023. 10. 17.
살구(1) 늘 그러했듯, 새벽닭이 울자, 할멈이 산책을 나섰다. 들녘을 한 바퀴 돌고 마을 초입의 느티나무 정자를 지날 때, 마루 밑에 엎드린 낯선 개 한 마리가 보였다. 할멈이 다가가자, 녀석이 일어나 뒷걸음질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이놈아! 어디서 왔어?” 할멈이 개와 눈을 맞추며 쪼그려 앉았다. “멀뚱멀뚱 쳐다만 보지 말고 이리 와. 어서.” 녀석은 겁먹은 듯 경계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자세히 보니, 상처 난 오른쪽 뒷다리에 피가 엉겨 붙은 채 파르르 떨었다. “버릴 거면 애초부터 키우지 말아야지. 누가 이런 시골에다 버렸을까?” 안쓰러운 표정으로 할멈이 혀를 차며 일어났다. 집으로 향하던 할멈이 몇 걸음 가다 뒤를 보았다. 개도 할멈을 뚫어질 듯 쳐다본다. 아침 햇살이 기지개를 켜며 올라왔다. 경운기가 느티.. 2023. 10. 17.
도심의 일출 2023. 10. 16.
갈대와 억새 셰익스피어는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라고 했고,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갈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 입에 오를 정도로 친숙하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반면 억새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억새는 갈대만큼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존재가 아니었나 봅니다.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로 시작하는 대중가요 있습니다. 여기서 으악새는 억새의 방언이라고 합니다. 관심이 없었던 탓인지, 노랫말의 으악새를 갈대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도 혼동했던 일이 있었나 봅니다. 사진을 취미로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억새를 갈대로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갈대와 억새가 같이 있는 풍경은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억새를 찍으러 갔다가 카메라에 담았.. 2023. 10. 16.
가을 하늘 2023.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