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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에세이/감성 한 잔89

역시 옷이 날개야! 패션은 권력이었습니다. 부정할 수 없습니다. 사실이었고 인류의 역사였습니다. 옷이 계급과 신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족이나 귀족은 화려한 색상의 옷으로 권력을 과시했습니다. 우리 조상만 그랬던 게 아닙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그랬습니다. 평민이나 하류 계층일수록 볼품없는 단색 옷을 입었습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사람들은 옷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의식주(衣食住) 문제를 이야기할 때도 우리는 먹는 문제(食)나 주거 문제(住)보다, 입는 문제(衣)를 제일 앞에 내세운 것도 우연은 아닐 겁니다. 여기에 ‘옷이 날개’라는 말도 있고, 심지어 ‘못 입은 거지는, 얻어먹을 수도 없다’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옷은 사람을 규정하는 마력(魔力)이 있습니다. 예비군복이 그렇습니다. 예비군 훈련받는 날이면 .. 2024. 2. 8.
고드름이 되어 보다. 끝없을 것 같았던 유랑생활을 접었습니다. 지나가던 바람이 힘겨워 한숨 쉬던 내 소리를 들었나 봅니다. 지난봄부터 가을까지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바람이었습니다. 나는 바람이 몰고 다녔던 하늘 목장에 한 마리 양에 불과했습니다. 바람은 언제나 목동 행세를 하며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랬던 바람이 겨울이 오면서 마음이 변했나 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마법을 부려 나를 하얀 별 요정으로 변신시켜 땅으로 내려보냈습니다. 내 모습은 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날 눈이라 불렀습니다. 난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바람과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때론 캄캄한 밤에, 때론 회색빛 짙은 낮에 여행을 즐겼습니다. 일단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를 이렇게 예쁜 모습으로 만들어 준 바람이 고마웠습니다. 땅으로 내려오던 날 .. 2024. 2. 4.
달콤한 말 TV 예능프로를 보다 보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신조어 때문입니다. 출연자끼리 주고받은 대화 속에 적지 않게 신조어(줄임말)를 거침없이 쓰는 걸 보면 무슨 말을 주고 받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과하게 표현하면 대한민국 땅이 맞나 싶습니다. 그러나 이게 요즘의 현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다)'라는 뜻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쉽사빠(쉽게 사랑에 빠지다)'라는 말도 있고, '늦사빠(늦게 사랑에 빠지다)’도 있고, '금사식(금방 사랑이 식는다)'이라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 유행어가 된 지 오래되었나 봅니다. 단순한 신조어를 넘어 우리말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 씁쓸한 측면도 있습니다. 사랑을 속삭일 때는 달.. 2024. 1. 31.
하얀 마음이 어디로 갔을까? 눈이 좋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눈을 기다렸습니다. 왜 좋아했는지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왜 좋아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냥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그땐 굳이 왜 좋아했는지 이유를 알 필요도, 생각할 필요도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동심의 세계는 어른들처럼 이성적인 생각과 논리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눈이 오는 날이면 동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릅니다. 아이들은 하나둘씩 동구밖 공터에 몰려듭니다. 금방 놀이터가 되어 야단법석입니다. 여기저기 손으로 눈을 뭉쳐 굴립니다. 눈 뭉치가 점점 커지고 눈사람이 만들어집니다. 다른 쪽에서는 편을 갈라 서로 눈싸움하며 신나게 놉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즐거운 웃음소리가 온종일 메아리칩니다. 눈은 아이들의 소울메이트가 된 것처럼 친구가 됩니다... 2024. 1. 28.
넌, 누구니? 예쁜 아기가 웃는 얼굴을 연상케 합니다. 그래서 찍은 사진입니다. 사실 장독대 위에 엎어놓은 시루입니다. 그 위에 간밤에 내린 눈이 쌓였습니다. 그런데 문득 시루를 유심히 보고 있노라니 어릴 적 아들이 환하게 웃는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지나치면 아무것도 아닌데 사진을 취미로 하다 보니 별것 아닌 것도 시선이 끌립니다. SD카드를 컴퓨터에 꽂고 다시 한번 보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떠오른 문장이 “넌 누구니?”였습니다. 주인공은 겨울에 내리는 함박눈(snow)입니다. 그 이상 설명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볼수록 사람이 웃는 얼굴처럼 보입니다. 달리 보면 공상과학영화 ET에 나왔던 외계인 얼굴 같기도 합니다. "넌 누구니?"라고 질문받았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까요. 먼저 이름을 말하게 될 것.. 2024. 1. 26.
흑백이 만든 미학(美學) 바둑은 흑과 백이 번 갈아 두는 게임입니다. 누가 집을 많이 짓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됩니다.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비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선 삶과 죽음이 존재합니다. 흑과 백의 오묘한 조화 속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다툼(공격과 방어)이 있고, 그 과정에 타협과 절충도 있습니다. 뻔한 꼼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묘수도 있습니다. 때로 과욕을 부리면 악수를 자초합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살이 비슷한 선택과 결정이 매 순간 있기에 인생의 축소판이라 하는 모양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흑백의 조화가 있을 겁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항상 밝은 날만 있지는 않습니다. 삶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어둠이 드리워져 있던 시간도 적지 않습니다. 그 어둠의 수렁이 깊어 아픔과 좌절의 시간도 있고, 반대로 기.. 2024. 1. 25.
나는 눈꽃입니다. 나는 겨울에 피는 꽃입니다. 해(sun)의 감성으로 피는 꽃이 아니라, 별(star)의 감성으로 피는 꽃입니다. 나는 햇빛으로 아름답게 보이지만, 햇빛 때문에 사라지는 꽃입니다. 모든 꽃이 뜨거운 로맨스 속에 사랑을 맺지만, 나는 그 반대입니다. 나는 사랑을 열정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사랑도 냉정으로 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겨울의 영혼을 품은 꽃입니다. 겨울의 진실과 사랑을 담은 꽃이기도 합니다. 순수함만 품고 태어나 아름다움만 보여주고 사라지는 꽃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화려함에 있지 않기에 나는 화려함을 거부합니다. 이 때문에 꽃으로서 유혹의 본능을 지니고 있지도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차가운 꽃입니다. 겨울 사랑은 신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차가운 사랑이 상처를 줄.. 2024. 1. 23.
겨울속에 숨은 미학 아름다움에 시선이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 때문에 아름다움이 사라진 후 그 모습은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아름다움의 이면에 감추어진 어둠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른 척하거나 외면합니다. 좋은 것만 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으니 굳이 뭐라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뜨락에 떨어진 시들고 추한 꽃잎을 보고 다가가 반기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은 추한 모습을 싫어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계절마다 본래의 아름다움이 연출됩니다. 빛의 미학과 따뜻한 사랑이 그려낸 화려함입니다. 온갖 색이 지닌 개성과 멋스러움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고 즐겁게 해주는 건 자연의 미학입니다. 하지만, 겨울은 화려한 색의 무대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웠던 꽃들의 색을 다 지워버립니다... 2024. 1. 1.
야곱의 사다리 사실, 단순한 빛 내림 사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탄절에 찍은 사진이라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충남 당진 신리 성지에 들러 잠시 사진 몇 장을 찍고 주차장으로 가던 중이었습니다. 때마침 들녘으로 내려오는 빛줄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경험상 빛 내림 사진은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습니다. 블로그에 올리려면 보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찍었습니다. 더군다나 올해 크리스마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이기에 반가웠습니다. 간간이 눈발도 날렸는데 함박눈까지는 아니었습니다. 황량하게 보이는 벌판에 하얀 눈이라도 내렸으니 제법 겨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사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풍경입니다. 단순한 날씨 변화가 만든 현상입니다. 구.. 2023. 12. 30.
스산한 풍경 농촌 들녘입니다. 풍요롭던 가을풍경이 다 지워졌습니다. 그 자리에 내려앉은 하얀 눈, 감성적인 시선으로 보면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다가서면 멋진 시 한 구절이라도 떠올 것 같습니다. 겨울이 그려낸 한 폭의 수묵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겨울 풍경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모처럼 눈이 내린 겨울 풍경이라 그렇게 보였습니다. 도심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입니다. 눈이 내린 도심은 목가적인 느낌이 없습니다. 회색 빌딩 숲, 넘쳐나는 인파, 오가는 차량 행렬, 때로 짜증스럽게 들리는 차량 경적, 이 모든 게 스산한 분위기와 먼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눈이 많이 오는 날의 도심 풍경은 농촌과 매우 대조적입니다. 여유와 낭만으로 바라보기 힘듭니다. 한 장의 사진이 때론 위안이 되고, 힐~링이 됩니다. 모든 사진이 그런.. 2023. 12. 28.
별이 눈이 되어 온 이유 밤하늘에서 별 하나가 내려왔습니다. 어쩌다 먼 우주에서 지구별에 왔을까. 그것도 혼자서. 길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먼 여행길에 내비게이션이 고장 나 길을 잘못 들어 선 걸까. 매서운 추위, 칠흑 같은 밤, 외롭고 무서웠을 텐데, 별은 강심장을 갖고 태어났나 봅니다. 아마 길을 잃었다면 엄마나 아빠, 아니면 친구들이 지구별을 찾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별이 이 밤에 홀로 온 것은 무슨 사연이 있어 보입니다. 별이 내려온 곳으로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습니다. 사방을 살펴봐도 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이 몰려드는 게 무서워서 숨은 걸까. 그래서 멀리 도망간 걸까.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별을 흠모하는 인간들이 몰려와 서로 차지하려고 싸울지도 모르니까요. 탐욕에 .. 2023. 12. 24.
수채화(水彩畵) 같은 사진 수채화는 물감을 물에 녹여 그립니다. 물에 녹아들지 않으면 자신의 색을 그림 속에 드러낼 수 없습니다. 화선지에 들어가야 비로소 색으로서 존재감을 나타냅니다. 물론 채색 여부는 화가의 선택입니다. 화가의 영혼에 담긴 미학의 관점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물감의 운명입니다. 물감은 화가의 구애(求愛)를 끊임없이 기다리며 조용히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물은 화가의 선택과 무관합니다. 수채화를 그리려는 화가에게 물은 평생 동반자나 다름없는 운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은 화가의 붓끝에 따라 선택된 물감을 위해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물이 물감을 아무런 조건 없이 품는 겁니다. 물감은 물을 만나는 순간 자연스럽게 색으로서 생명력을 얻어 숨을 쉬기 시작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물감.. 2023. 12. 12.
외로움과 이별하기 외로움은 마음의 통증입니다. 혼자 있을 때 느낍니다. 나도 모르게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로 가을에 옵니다. 누군가는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느끼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나뭇가지에 매달린 마지막 잎새를 보고 가슴을 저밉니다. 가을은 가지고 있던 걸 내려놓으며 우리에게 이별을 예고합니다. 외로움의 서막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겁니다. 떠난다는 것은 홀로 남는 것이고, 떠난 자리는 아무도 채워주지 않습니다. 그 공간은 오롯이 내 몫입니다. 가을은 떠나는 계절이고, 혼자서 내 안의 나를 위로하고 안아주면서 마음을 토닥거려 주어야 하는 격려의 시간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외로움을 탑니다. 가을은 누구든 혼자 있는 게 힘들고 상처받기 쉬운 것은 이 때문입니다. 여름은 잠깐입니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외로움은 홀연.. 2023. 12. 10.
가을을 타나 보다 하늘의 구름이 솜으로 보였던 어린 시절,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 수 없을까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시골마을에 드나드는 교통수단이 귀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시골 신작로(비포장도로)를 다니는 버스도 하루에 두 번 볼 수 있을까 말까, 하던 때였으니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옛날이야기입니다. 버스가 한 번 지나가면 뽀얀 먼지가 구름을 만들듯 피어오르다 이내 사라지던 옛 풍경이 스쳐 지나갑니다. 늦가을 겨울 준비를 위해 어머니가 이불솜을 보자기에 싸 머리에 이고, 장날 솜을 타러 나서던 뒷모습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생소한 표현일 겁니다. ‘썸 타다’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솜 타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을 겁니다. '타다'라는 동사가 들어가 있으니 비슷하게 보이지만 뜻은 전혀 다릅니다. 뭉쳐져 있는 오래.. 2023. 12. 7.
그리움 가만히 눈감고 가을을 안아 보시기 바랍니다. 살포시 떠오르는 그리움이 다가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그 속에 들어있는 추억이 무엇인지 더듬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움은 추억의 앨범 속에 묻어둔 시간의 흔적이자 아물지 않은 아쉬움의 상처입니다. 어쩔 수 없이 미련을 버리고 돌아서야 했던 후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 그 속에 머물러 있는 아련한 흑백사진 같은 내 모습이거나 아득한 고향 풍경이 그리움의 실체이고, 때론 헤어지기 싫은 이별의 아픔이기도 하고,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그림자가 그리움으로 홀연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가슴에 사무치거나 눈에 어른거리는 그리움이라면 당신의 어머니일 가능성이 큽니다. 처음 경험한 그리움은 아주 어릴 적이었습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시골에서 도회.. 2023. 12. 6.
바람을 담다 보이지 않습니다. 잡을 수 없고, 잡히지도 않습니다. 항상 공중에 떠돌아다닙니다. 땅에 내려오는 일도 없습니다.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이름은 있으니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실체도 없고, 그가 어디서 사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나그네처럼 유랑생활을 합니다. 그의 이름은 바람입니다. 가을에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외로움, 쓸쓸함, 고독, 나그네, 방황 같은 단어가 생각납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가을이면 나도 모르게 앞에 언급한 단어가 품고 있는 감정에 빠지게 됩니다. 이들 단어의 공통적인 뉘앙스는 ‘우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 이런 이유로 ‘가을 탄다’라는 말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같은 바람이라도 가을에 만나는 바람은 감성을 파고듭니다. 거.. 2023. 12. 5.
추워야 피는 꽃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면 가을은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낙엽이 지기 시작하면 종착역을 앞두고 달립니다. 따스하던 바람도 서늘해지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집니다. 계절의 시계는 변함없이 돌아가고, 아름답던 꽃들의 외출을 더 이상 보기 어려워집니다. 짧은 계절이 아쉽습니다. 공허함이 짙은 그리움으로 가슴에 남는 시간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절기상으로 입동도 지났고, 첫눈까지 내렸으니까요. 가을은 떠나는 계절입니다. 꽃들이 떠났고, 낙엽도 떠나고 있습니다. 따스했던 바람도 떠났습니다. 그 자리를 밀치고 들어온 찬바람이 갈 곳을 잃고 보도 위에 뒹구는 낙엽을 몰고 갑니다. 꽃에 머물고, 단풍에 깃들었던 그리움도 이젠 갈 곳이 없어졌습니다. 어딜 봐도 꽃에 이끌렸던 사랑을 느낄만한 대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시선이 가.. 2023. 11. 23.
따뜻한 슬픔 슬픔을 만져봅니다. 따뜻합니다. 차갑게 느껴질 줄 알았습니다. 사랑이 아직 식지 않아 그런가 봅니다. 아마 품속에 남아있는 그리움이 사그라들면 차가울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눈물이 이슬이 되어 아픔을 돋게 할 겁니다. 그때 서야 만져본 슬픔이 제대로 느껴져 마음에 통증이 전달될 겁니다. 슬픔이란 감정은 따뜻한 온기가 있습니다. 슬픔은 뜨거운 심장에서 흐르는 눈물이기 때문입니다. 볼 수도 보이지도 않는 슬픔의 실체를 만지는 일은 감각이 아니라 감정으로 전달됩니다. 감정은 마음의 감각입니다. 그러니 감정으로만 만질 수 있고 느낍니다. 그러나 감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얼어붙은 마음으론 슬픔이 만져지지 않습니다. 사는 동안 숱한 기억에 숨어있는 감정의 퍼즐이 마음의 호수에 흩어져 떠다닙니다. 흩어진 조각 속.. 2023.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