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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를 마치며(10) ‘고향의 봄’이란 동요가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참 많이 불렀던 동요입니다. 시골 촌구석에서 자라서 그런지, 고향을 떠올리면 마을 언덕과 과수원길이 절로 그려집니다.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더더욱 그리워집니다. 늘 그렇듯 고향을 하면 늙으신 어머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 일하느라 고생을 밥 먹듯 하시며 사셨을 어머님들이 한두 분이 아닐 겁니다. 특히나 촌구석에서 자식들을 도회지로 떠나보낸 부모님들은 추석 명절을 손꼽아 기다릴 겁니다. 배운 게 없어, 농사만 지을 줄 아는 노인들은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지 못하는 것을 팔자려니, 하고 고향을 지킵니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자식들은 생업에 바쁘다 보니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찾기도 쉽지는 않습니다.. 2023. 10. 26.
운해 일출 2023. 10. 25.
살구(9) 할멈의 행방불명 신고를 받은 119 구조대가 마을에 도착했다. 용식 할멈이 마실 왔다가 인기척이 없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벨이 울리기에 문을 열어 봤더니 아무도 없었다. 구조대원과 마을 사람들이 마을을 찾아봤지만, 할멈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수색작업은 내일 아침에 재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들과 딸, 사위는 불안했다. 딸이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웃으시며 반기던 엄마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아들도 침울한 표정으로 방에 들어갔다. 방바닥에 은행 대출서류가 보였다. 연필로 그려준 동그라미에 엄마의 도장이 찍혔다. 달빛 아래 살구나무와 덩그러니 빈 개집. 어쩌면 엄마에게 살구가 있으니, 무사할지도 모른다고, 남매는 희망을 품었다. 이튿날. 마을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수색작.. 2023. 10. 25.
가을입니다(3) 2023. 10. 24.
살구(8) 할멈은 은행 서류에 도장을 찍을지 말지 고민했다. 맞벌이하는 데 왜 대출을 받는다고 난리를 치는지 모르겠다. 애들 학군인지 뭔지 때문에 이사 가야 한다는 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엄마다. 통화해도 괜찮니?” 할멈이 고민 끝에 딸에게 전화했다. “엄마. 무슨 일 있어?” “어제 동생이 왔다 갔어. 그런데 아직도 대출받아야 한다며 도장 좀 찍어 달라고 난리다. 어떡하면 좋냐?” “엄마. 해 주면 안 돼. 나중에 쫓겨나면 어떻게 하려고. 올케 하는 거 보면 뻔해. 안 모실 거라고. 그럼 엄마 갈 데는 요양원밖에 없어. 내가 모시려고 해도 시부모 다 살아계셔서 힘들어. 알잖아? 엄마.” 할멈이 고민 끝에 마음먹은 생각을 딸이 극구 반대했다. “그래. 알았어.” “엄마! 절대 안 돼. 알았지.” 살구가 공을.. 2023. 10. 24.
가을입니다(2) 2023. 10. 23.
살구(7) 어제저녁 느닷없이 아들이 온다는 전화를 받았다. 할멈은 마을 어귀로 나와 아들을 기다렸다. 살구가 느티나무 정자 주변을 한가로이 왔다 갔다, 하더니 언덕으로 올라갔다. BMW 승용차가 마을로 들어와 마을회관 공터에 멈추었다. 아들과 며느리가 내렸다. “왜 둘만 와?” 할멈은 손자가 더 보고 싶었다. “할머니 집은 화장실이 무섭다며 안 가겠다는데 어떡해….” 아들이 투덜거리며 인사를 대신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봄에 아파트처럼 다 고쳐 놓았는데….” 할멈이 서운해서 말끝을 흐렸다. 건강은 어떠냐고 안부를 묻는 며느리가, 할멈은 달갑지 않았다. “나이 들면 다 그렇지 뭐.” 살구가 길을 안내하며 앞장섰다. 할멈이 손자 손녀가 학교에 잘 다니는지 묻지 않았다. 아들이나 며느리의 대답은 무성의할 것이고, 둘의.. 2023. 10. 23.
가을입니다(1) 2023. 10. 22.
진실의 입과 영화 "로마의 휴일" 처음 본 순간 요정인 줄 알았다. ‘세기의 연인’ 또는 ‘불멸의 연인’이라 불리던 오드리 헵번에 대한 첫 느낌이다. 그녀는 에서 여주인공인 앤 공주역을 맡았고, 미남 배우 그레고리 펙이 신문기자 역인 조 브래들리 역을 맡아 열연했던 영화다. 이 영화를 서너 번은 본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긴 여운이 남았던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앤 공주(오드리 헵번)가 대사관에서 기자회견하는 장면이다. 기자인 줄도 모른 채 아쉬운 이별의 포옹을 하고 헤어진 앤 공주는 대사관 기자회견장에서 조 브래들리(그레고리 펙)를 마주한다. 앤 공주는 놀란 표정이었지만, 극도로 감정을 조절하며 우아하게 품위를 잃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의 눈빛으로 두 사람만의 교감을 나눈다. 영화를 보는 동안 가장 가슴.. 2023. 10. 22.
살구(6) 마당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집에 있어?” 할멈이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문을 열었다. 용식 할멈이 왔다. “해가 중천인데 자고 있었어?” “들어와.” “술 마셨어? 소주 냄새가 나는데.” “어제저녁 하도 적적해서 월류정에서 조금 마셨어.” “아이고 나라도 부르지. 할망구야.” “요즘. 내 맘을 나도 모르겠어. 자꾸만 허전한 게. 이 나이에 내가 계절을 타나?” “아직도 청춘이구먼. 하하하.” “내일모레. 수요일. 읍내에서 KBS 전국노래자랑 녹화방송이 있다는 데. 같이 구경이나 가지.” “전국노래자랑?” “다들 송해 오빠 보러 가자는데.” “그럼 나도 가지 뭐.” 모처럼 단장하고 나섰다. 살구가 의아한 표정으로 할멈 뒤를 따라왔다. 동네 노인들도 한껏 멋을 내고, 버스정류장에 모였다. 마을이 텅 비.. 2023. 10. 22.
가을 안개(6) 2023. 10. 21.
베르사유 궁전 ‘질투(嫉妬)’라는 말은 시샘하고 미워한다는 뜻이다.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서 남자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여자가 싫어하는 것을 말한다. 소유와 욕망의 관점에서는 다른 사람이 가진 무엇을 못 마땅히 여기며 탐을 내거나 싫어하여 마음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질투는 본능에 가깝다. 질투(嫉妬)는 남· 여 간의 애정 문제나 인간이 지닌 소유와 욕망은 인간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나 사극을 보면 질투는 여성들의 전유물로 많이 묘사되곤 한다. 남자는 여러 명의 첩을 두었고, 본부인과 첩들은 한 남편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갈등을 그리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역사 속에서 질투를 그린 드라마 중 대표적인 예가 장희빈이 아닐까, 싶다. 숙종은 자주 중전의 자리를 갈아치우는 우유부.. 2023. 10. 21.
살구(5) 추석에도 할멈은 설에 이어 혼자 성묘를 다녀왔다. 마음이 무거웠다. 고향을 누가 지키며 살 것인가. 시골은 고령화되어, 나이 육십이 면 청년이라는 말을 듣는 게 현실이다. 이대로 가다간 농촌이 사라질지 모른다. 걱정이다. 점심을 거른 채 TV를 켰다. 추석 특집 전국노래자랑이 방송되고 있었다. 유일하게 마음을 달래주는 프로였다. 재미있게 TV를 보는데, 살구가 멍멍 짖었다. 문을 열자 옆집 용식 할멈이 왔다. “뭐 해?” “뭐 하긴 송해 오빠 보고 있지. 용식이 올라갔어?” “고속도로 막힌다고 차례상 물리자마자 바로 올라갔어.” “할멈 아들은 안 왔어?” “부잣집 며느리 얻었다고 다들 부러워했는데. 장가가니까 소용없구먼.” “품 안에 자식이래잖아.” “예전엔 마을회관에서 윷놀이에다가 막걸리 한 사발 기울.. 2023. 10. 21.
가을 아침 2023. 10. 20.
살구(4) “벌초를 왜 힘들게 엄마가 해? 아들은 뭐 하고?” 딸은 남동생이 너무하다며, 할멈에게 투덜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올케가 엄마를 모시지 않으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왔다. “바빠서 못 온다는 데, 어쩌겠냐? 나라도 해야지.” 할멈은 아들을 감싸며 에둘러 핑계를 댔다. “장모님. 건강은 좀 어떠세요?” 저쯤에서 멈칫거리던 사위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늙은이 몸이 그렇지. 뭐. 그나저나 자네 사업은 어떤가?” “미국산이다. 호주산이다, 수입 쇠고기가 워낙 많이 들어와 힘들죠.” “큰일이네. 이러다 축산농가 밥이나 먹고살 수 있는지 모르겠어. 과수농가도 바나나다 망고다 해서 수입 과일 때문에 힘든데….” “장모님. 힘들긴 해도 거래처 절반은 농협 매장이라 든든한 편이에요.” “엄마. 사위가 지난달 한우영농조.. 2023. 10. 20.
이슬 2023. 10. 19.
런던 시청 어찌 보면 달걀모양 같기도 하고, 달리 보면 모터사이클 헬멧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배이더 헬멧(Darth Vader’s Helmet)과 비슷하다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건물은 바로 런던 시청사 건물이다. 시청사 건물은 노먼 포스터에 의해 설계된 건물로 2002년 완공되었다. 애당초 에너지 절약형 건물로 설계에 중점을 두었고, 건물 전체가 남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들어서 직사광선 피하면서도 채광 시간을 오래 받도록 했으며, 건물 모양도 둥글게 해서 통풍이 아주 잘 되게 했다고 한다. 이러한 설계 덕분에 40% 정도의 에너지를 절약이 된단다. 높이 45m에 10층 규모의 런던 시청사 건물은 사실상 어디가 정면이고 어디가 후면인지 구분이 안 된다. 건물의 .. 2023. 10. 19.
살구(3) 추석을 앞두고 할멈이 마루에 앉아 마당에서 놀고 있는 살구를 쳐다보았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냐? 네 팔자도 어지간하다. 어쨌거나 지난 일은 다 잊어. 알았지?” 조끼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 벨이 울렸다. “엄마! 별일 없지?” 며느리를 앞세워 왔다 간 아들이 뜬금없이 전화했다. “별일은 무슨 별일, 벌초하러 언제 올 거야?” 추석이 다가오니, 먼저 저승 가신 영감의 벌초도 하고, 성묘도 해야 할 것이므로 할멈이 물었다. “엄마! 요즘 누가 벌초를 해. 대행업체에 맡겨.” 아들이란 놈이 불효를 당연하게 투덜거렸다. “오기 싫으면 그만둬. 말하는 내 입만 아프지. 됐고, 추석에 올 거지? 손자 얼굴이라도 보여줘야지.” 할멈은 화가 났지만, 손자는 보고 싶었다. “….” 대답은 없고, 곁에 붙어 앉은 며느.. 2023. 10. 19.
억새밭 일몰 2023. 10. 18.
가을 무곡 춤을 춥니다.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는데 어디선가 리듬을 타고 와 가을바람이 춤을 춥니다. 우리는 그 리듬의 선율과 춤의 향연을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습니다. 이처럼 자연이 만든 무대는 우리가 만든 무대와 다릅니다. 가을 들녘이 그려내는 풍경은 바람과 빛이 조화를 이루는 넓은 들녘으로 나와야만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롯이 가을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공연입니다. 춤은 오선지에 올려놓은 음표에 따라 박자와 리듬이 있어야 합니다. 홀로 추는 춤은 외로워 보여 가을을 쓸쓸한 계절로 만듭니다. 그래서 춤은 누군가와 같이 추어야 아름다워 보입니다. 과연 이 넓은 들녘에서 누가 바람과 함께 춤을 출 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애간장 녹이듯 시간은 더디게만 갑니다.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노.. 2023. 10. 18.
살구(2) “웬 개여? 장날 사 왔는가?” 할멈이 마실 오지 않으니, 용식 할멈이 왔다. “누가 버린 거 같아 데려왔어.” 앉을자리를 손바닥으로 쓸며 말했다. “잘 됐구먼 그려. 검둥이가 죽고 나서 많이 적적해하더니만.” 용식 할멈이 마루에 걸터앉아 살구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똥개는 아닌 거로 보이는데. 이름이 무엇이여?” “이름? 살구여.” “고향의 봄. 노래에 나오는 그 살구?” “맞아, 그 살구.” “듣고 보니 괜찮네.” “오늘 장날이라. 고추 좀 내다 팔러 갈 건데. 같이 가시려나?” 용식 할멈이 장에 갈 것인지 물었다. “지난 장에 갔다 왔어.” 할멈이 마른 고추 자루를 머리에 이고 장터로 나섰다. 살구가 촐랑촐랑 따라왔다. 늘 다니는 길인데, 장에 가는 날만큼은 멀게 느껴진다. 정류장에 도착해서야 할멈.. 2023. 10. 18.